Book Review

-* 거친 산 오를땐 독재자가 된다. *-

paxlee 2006. 4. 30. 20:51

 

                          거친 산 오를 땐 독재자가 된다.

 

높은 산을 오를 때는 수많은 변수가 따르고, 결정해야 할 일이 투성이다. 리더는 결정하고 치밀하게 챙기는 사람이다. 한국 최고의 산악인 엄홍길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서울에서 보는 엄홍길과 히말라야에서 보는 엄홍길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서울에서는 털털하고 수더분하지만 히말라야에서는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지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성질 급한 사람이 된다. 왜 그럴까? 그의 답변은...

 

“평지에서는 웃어넘길 수 있는 사소한 실수가 높은 산에서는 팀 전체를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장비의 매듭하나 풀린 정도의 사소한 부주의 때문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 된다. 고산등반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섬세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정상 공격조 몇 명을 올려 보내기 위해 수십 명이 몇 달간 팀워크를 이루어 준비하고 계획해야 한다. 보급을 예로 들더라도, 서울에서는 깜빡 잊어 버리고 못 챙긴 물건은 다시 구입하면 되지만, 히말라야에서는 그럴 수 없다.

 

기술과 장비가 발달했다 해도 히말라야 고산등반은 생명을 건 모험이다. 등반을 책임 진 대장으로서, 세세한 부분까지 점검하고 챙기는 것은 당연하다. 히말라야에서는 사소한 것과 중요한 것의 판단은 대장인 내가 한다.”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곳에서 어떻게 대충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엄홍길은 변화를 좋아하고 새로운 도전을 즐긴다. 그는 낯선 곳에서의 아침을 즐긴다.

 

그는 국내 처음으로 외국인과 함께 동반산행을 시도했다. 14좌 가운데 5좌를 스페인 등반대와 함께 오른 것이다. 그는 외국인과의 등반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웠다. 우선 경량등반이라는 새로운 접근방식을 배웠다. 그 동안 한국 등반은 많은 인원이 가서 시끌벅적한 잔치 분위기 속에서 등반을 했다. 하지만 스페인 팀은 경제적으로 등반한다. 소규모 인원과 장비로 단시간에 등반하는 방식이다.

 

등반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체계화하고 프로세스가 합리화되어 있다. “경량화와 속공”이라 할 수 있다. 분위기도 다르다. 등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밝고 필요 이상 정신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는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기고 중요시한다. 이런 혁신은 필요에 의해 생겨난다. 가만히 앉아 혼자 생각하다 변화의 필요성을 느껴 혁신하는 경우는 없다. 외부 환경으로부터 변화를 느끼고 생존을 위해 적응해 가면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혁신이다.

 

엄홍길은 1988년 에베레스트 등반에는 쉽게 성공했지만, 이후 89년부터 93년까지 시도된 히말라야 8000미터 급 봉우리에 대한 도전에 6번을 연이어 실패한다. 그리고 이 일 때문에 스폰서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영화에 연속으로 실패한 감독이 제작자를 구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런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시도한 것이 외국인과의 합동 등반이었다. 그런데 이 일로 인해 뜻밖의 많은 배움을 얻는다.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만족스러운데 변화하고 혁신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앞이 보이지 않고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고 느낄 때 우리는 돌파구를 찾게 되고 변화는 시작된다. 시간이 없어서 공부 못 한다는 학생은 시간이 많아도 공부를 못 한다. 돈이 없어서 사업을 못하는 사람은 돈이 많아도 사업을 못한다. 혁신은 늘 부족한 가운데 생겨난다. 리더는 사소한 것과 중요한 것을 구분하는 사람이다. 엄홍길은 중요한 일은 철저하게 점검하고 챙긴다. 가능하면 남에게 맡기지 않는다.

 

사소한 일은 아예 무시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 버린다. 국내 산행에서 먹을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루트로 갈 것인가 같은 일에는 알아서 하라고 얘기하고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국내 산행에서 길을 잃거나 굶어 죽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에베레스트 같은 고봉에서의 루트 개척은 직접 나선다. 어려운 부분일수록 자신이 직접 해야 지형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고 나중에 생길지 모르는 위험에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고산지대에서 사용하는 특수 의료용연고 같은 것은 확실하게 챙긴다. 만약 특수연고가 없으면 사소한 상처에도 대원은 심하게 고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순위를 알아야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급해보이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은 어떤 것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일에 집중하고 별 것 아닌 일은 위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사소한 것에도 정성을 다한다.

 

그가 등산화 신는 모습은 경이롭기 조차 하다. 신발에 혹시 작은 모래알이라도 있을까 봐 신발 바닥을 위로 해서 완전히 하늘로 올려 햇빛에 비춘 다음 꼼꼼하게 살피면서 손톱으로 모래나 먼지를 하나하나 털어낸다. 마치 경건한 의식 같다. 그에 대한 엄홍길의 답변이다. “일단 운행을 시작하면 잠자리에 들 때까지 등산화를 벗을 수 없다. 혹시 잘못해 돌 가루라도 들어가면 신경이 쓰이고 집중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차 안에 들어온 파리를 잡다 사람이 죽은 사례가 있다고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런 것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한다. 그는 정리정돈을 잘 하기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엄홍길의 텐트는 척 보면 알 수 있다. 워낙 깔끔하게 정리 정돈되어 있기 때문이다. 눈 감고도 찾을 수 있도록 장비 놓이는 자리가 정해져 있으며, 항상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다.

 

어찌나 텐트를 잘 정돈하고 관리하는지 셰르파들은 엄 대장의 텐트를 신전이라고 부른다. 인간이란 사소한 것에서 흐트러지면 마음가짐도 흐트러지고 종국에는 목적 의식도 약해진다. 리더는 정확하게 판단하는 사람이고 그런 판단력은 맑은 정신에서 나온다. 그리고 맑은 정신은 건강한 생활태도와 관련 있다. 등산화 신는 것, 텐트 정리하는 것,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다.

 

최대의 집중력 발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의식이다. 엄홍길은 겸손하다. 책 한 권을 선물 받자 두 손으로 정중히 받은 다음 머리에 대고 간단한 기원을 한다. 선물에 감사하고 주신 분에 대한 축원이다. 너무나 진지하다. 식사를 도와주는 분에게 수고비를 줄 때도 두 손으로 정중하게 준다. 산에서 배운 겸허함이 몸에 배어 있다. 그는 산에서 겸손을 배웠다. 산은 겸허한 자에게만 정상을 허락한다는 것을 배웠다.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산이 허락하면 인간은 잠시 정상을 빌리는 것에 불과하다. 산 정상에 오름으로서 대자연을 이겨보겠다는 것은 철부지의 만용이다. 등반이란 대자연에 순응하면서 정상을 잠시 빌릴 기회를 산에게 허락 받는 것이다. 강철 같은 의지는 필수조건이지만, 의지만으로 오를 수는 없다. 대자연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 산에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승리는 위대하지만 실패를 딛고 일어선 승리는 더욱 위대하다. 엄홍길의 14좌 완등은 14번의 실패를 딛고 이루어낸 결과이다. 그가 위대한 것은 실패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실패를 거듭했지만 이를 이겨내고 다시 도전해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작은 성공은 실패 없이도 가능하다. 그러나 큰 성공 뒤에는 항상 쓰라린 실패가 있게 마련이다. 그는 88년 에베레스트 성공 이후 6번을 내리 실패한다.

 

안나푸르나, 낭가파르바트, 시샤팡마, 초오유… 죽음의 문턱에 다녀온 후 그는 히말라야에 대한 경건함을 배운다. 고산등반은 신들의 영역이란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성공한다. 하지만 11번째 봉우리 안나푸르나에 도전하다 또 다시 실패한다. 정상을 500미터 남긴 시점에서 세르파 2명이 추락했고 이들을 구하려다 발목이 180도 돌아가는 중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헬기도 올라올 수 없는 곳에서의 사고였다.

 

2박 3일에 걸쳐 베이스캠프까지 기어온다. 그리고 재기한다. “1988년 에베레스트를 처음 올랐을 땐 정말 무서운 것이 없었지만, 연이은 실패는 내 인생을 돌아보게 했다. 히말라야는 나를 거부하는 것 같았고, 나는 그 냉혹함에 진저리를 쳤다. 그 사건으로 나는 힘만 믿는 청년에서 겸손함을 아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었다.” 연이은 성공에는 아무런 피드백도 없고 전환도 없다. 오로지 승리만 맛보았다면 지혜와 판단력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발육부진에 빠지게 된다.

 

빌 게이츠도 실패를 중요시 한다. 그의 얘기이다. “나는 실패한 기업에 몸담은 경력이 있는 간부를 의도적으로 채용한다. 실패할 때는 창조성이 자극되기 때문이다. 밤낮없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 수 밖에 없다. 나는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을 주변에 두고 싶다. 난국을 타개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어려운 상황일수록 빛을 발한다.” 인간은 쉬운 싸움에서 이기는 것보다 어려운 싸움에서 패배하면서 비로소 성장한다.

 

그는 최고의 인사 전문가이다. 성공적인 등반을 위해서는 좋은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 특히 유능한 세르파를 고용하는 것은 등반성공에 필수적 요소이다. 그는 세르파를 채용할 때 등반기록을 먼저 검토하고 평판을 알아본 다음 면접을 한다. 네팔에서 엄홍길의 별명은 “엄싸부”다. 이들을 존중하고 인간적으로 대접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등반대는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면 라마제를 지낸다.

 

산신에게 올리는 티베트 불교 고유의 전통제사이다. 산에 오르겠다는 고지와 동시에 안전 등반을 기원하는 의식으로 셰르파에게는 절대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금기사항이 많다. 닭이나 염소를 죽이는 살생, 고기를 불에 구워먹는 것… 많은 사람들은 이를 무시하지만 엄홍길은 철저히 존중하고 많이 배려한다. “셰르파는 우리가 돈을 주고 고용했지만 등반을 같이 하는 동료이다.

 

이들을 어떤 사소한 일로도 자극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해 주는 것은 등반의 성과와 직결된다. 셰르파들의 금기를 미신이라고 무시하면 거리감이 생긴다. 셰르파와 한 팀이 될 수 없다. 그의 이런 인간적 대우는 1998년 안나푸르나에서 생긴 사고로 더욱 유명해졌다. 정상을 500미터쯤 남긴 지점에서 셰르파 2명이 크레바스로 떨어지는 사고가 나고 엄홍길은 이들을 구하기 위해 로프를 잡았는데 이 때문에 발목이 180도 돌아가는 치명상을 입는다.

 

현지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 이 이야기는 큰 화제가 되었다. 또 히말라야에 가면 먼저 간 셰르파의 유족을 만나 위로하고 경제적 도움도 준다. 리더는 사람을 움직이는 직업이다. 엄홍길은 사람을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대인관계에도 탁월성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외향적이거나 나서는 성격은 절대 아니다. 그저 진실되게 사람을 대하는 것이 노하우이다.

 

그를 한 번 만난 사람은 그에 대해 호감을갖게 된다. 그는 산을 대하듯 인간을 대한다. 그의 얘기이다. “나는 산을 대하는 것처럼 사람을 대하면 마음이 통할 것이라 믿는다. 인연이 닿아 만난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대하고, 약속과 의리를 지켜나가려 했다. 배경이 없는 내가 실력과 태도에서 밀리면 물러날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산에 가면 몸을 아끼지 않고 잔 머리 굴리지 않고 솔선 수범했다.

 

남보다 30분 먼저 일어나 준비하고 무거운 짐 먼저 지고, 험한 일에 먼저 나섰다. 잔 머리를 굴려서는 안 된다. 모두가 똑똑한 사람이다.” 그는 꼼수없이 진정으로 사람을 대한다. 흔히 등반을 삶에 비유한다. 올라가기 전에는 까마득하게 보여도 한 발 한 발 올라가다 보면 어느덧 이렇게 많이 올라왔나 하는 느낌이 그렇다.

 

올라갈 때 보다는 내려갈 때가 힘든 것도 삶과 비슷하다. 힘들 때가 있지만 상쾌하고 기분 좋을 때가 있다. 실패할 때가 있지만 좌절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다 보면 희망에 찬 순간이 오는 것도 그렇다. 이 책은 그런 것에 대한 깨달음을 주는 책이다. 엄홍길 대장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 받기를 바란다.

 

[ 저 자 : 김경준 / 196P / ₩ 10,000 ]
[ 리 뷰 : 한근태 소장(한스컨설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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