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에베레스트 실버 원정대 [2]

paxlee 2007. 4. 26. 22:07

 

    에베레스트에 백발 휘날리며…

 

60~75세 ‘실버 원정대’ 4월 24일 네팔로
넉달 테스트 거쳐 뽑힌 인생의 황혼기 8명 남이 못한 일 이루려…
25㎏ 배낭 등에 메고 하루 12시간 강훈련…

 

 ▲ 에베레스트 정복을 위해 오는 24일 출발하는 실버 원정대가 3일 북한산 백운대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광현(67), 김성봉(66), 박승언(66), 이남진(69), 이장우(63), 차재현(75), 김상홍(60),

이충호(64)씨. /사진 : 김보배 객원기자

 

가랑비가 내리는 4일 오후 북한산 백운대.

남자 8명이 경사가 45도가 넘는 미끄러운 암벽에서 로프로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20㎏이 넘는 배낭까지 메고 한 시간 가량 오르내리기를 반복한 뒤 훈련을 끝내고 안전모를 벗었다. 성성한 백발과 주름살 팬 얼굴에서 모락모락 하얀 김이 솟았다. 퇴직자 등 60~75세 노인 8명으로 구성된 ‘에베레스트 실버 원정대’가 탄생했다.

 

강철 체력과 전문 기술로 무장된 젊은 산악인들도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세계 최고봉 정복을 이처럼 노인들로만 구성된 원정대가 도전한다. 할아버지 원정대는 한국에선 처음이고, 세계적으로도 극히 드문 일이다. 이들은 오는 24일 네팔로 간다. 에베레스트 정상 정복까지 3개월간의 대장정에 오른다. 인생 황혼기에 ‘남이 해보지 못한 일’을 성취하기 위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길’을 떠나는 셈이다.

◆ 목숨 건 도전

올해는 고(故) 고상돈씨가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조선일보와 월간 산, 한국산악회가 공동 주최로 60세 이상 산악인을 대상으로 에베레스트 실버 원정대를 모집했다. 전국에서 53명이 지원했고, 4개월 동안의 체력 테스트 등을 거쳐 8명이 최종 선발됐다. 최홍건 한국산악회장(한국산업기술대 총장)이 실버 원정대 단장을 맡아 총지휘를 하고 있다.

이날 백운대 훈련을 마치고 이장우(63·경찰청 경감 퇴임)씨가 “백두대간 9개 정맥을 단독 종주했다”고 자랑하자, 다른 대원들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킬리만자로, 엘부르즈, 안나푸르나, 슐탄봉 등 화려한 등반 경력을 쏟아냈다. 그런 이들에게도 이번 훈련은 혹독했다. 무게 25㎏ 배낭을 메고 하루 12시간씩 나흘을 행군하기도 했고, 네팔에서 해발 6000m 현지 적응훈련까지 마쳤다. 이들은 새해 첫날도 눈이 2m나 쌓인 설악산에서 맞았다.

죽을 고비도 있었다. 지난달 3일 한라산에서 2~3m 쌓인 눈을 헤치고 전진하는 훈련을 할 때 눈사태가 일어났다. 훈련 지원단까지 합쳐 16명 중 10명이 눈 속에 완전히 파묻혔다. 선두에 섰던 이충호(64·서울증권 지점장 퇴임)씨는 물구나무 상태로 1m 눈 속에서 15분 동안 갇히기도 했다. 모두들 “한날 한시에 죽다 살아난 셈”이라며 “이제 우리 생일은 2007년 2월 3일로 똑같아졌다”고 했다.

 

◆ 피할 수 없는 고산병… 일부 가족들 반대

이렇게 맞춤 훈련을 해도 3개월간 계속되는 에베레스트 등정은 환갑을 넘긴 이들에게 목숨을 건 도전이다. 에베레스트 정복을 목표로 한 60세 이상 대원이 8명이나 포함된 원정대는 세계적으로도 구경하기 힘든 사례다. 6500m 캠프에서 이들을 지원해 줄 실버 원정대 김종호(52) 부단장은 “7000m 이상부터 산소통에 의지하기로 했지만 설사, 구토를 일으키는 고산병은 피할 수 없다”

 

“전문 산악인도 최소 12시간 이상 걸리는 마지막 마(魔)의 900m가 등정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런 위험을 잘 아는 가족들은 당연히 반대했다. 부대장이자 ‘막내’인 김상홍(60·계명대 산악부 지도교수)씨의 부인은 아직까지도 등반을 허락하지 않았다.

 

지난 2004년 김씨가 단장 자격으로 계명대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이끌었을 때 그의 제자가 숨진 아픔을 부인도 잊을 수 없다. 나이가 가장 많은 ‘큰형’ 차재현(75·개인사업)씨는 지난 1989년 에베레스트 등반에 도전했다가 고산병을 겪고 난 후 몇 년 동안 실어증(失語症)을 앓기도 했다. 가족 반대도 제일 심했다.

 

◆ “내 인생의 마지막 흔적이 아니기를…”

가족이 왜 반대하는지도, 8명이 모두 함께 성공할 수는 없다는 것도 그들은 잘 안다. 해군 UDT(수중 파괴반) 대령으로 전역해 1996년 수영팀을 이끌고 경주 앞바다에서 독도까지 릴레이 수영에 성공했고, 지난해 킬리만자로까지 오른 조광현(67)씨지만 “이번에는 마음을 비웠다”고 했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야겠지. 그래도 우리들 중 한 명은 꼭 정상을 밟을 거야.”

원정대 등반대장을 맡은 김성봉(66·한국산악회 부회장)씨는 지난달 6일 부인이 혀에 암이 생겨 혀 절반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훈련을 포기했던 김씨를 일으켜 세운 건 말 못하는 부인이 쓴 메모였다. ‘우리 같은 노인도 하면 된다는 걸 보여줘요.’ 중학교 교장으로 퇴임한 이남진(69)씨는 가족에게 이 말만은 꼭 하고 싶다고 했다. “어쩌면 이 등반이 내 인생의 마지막 흔적이 될 수 있지만, 나는 최초의 흔적이 될 거라고 믿는다. 여보, 무사히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마.

 

◆ 꿈은 이루어진다

실버 원정대
8명이 훈련을 하나하나 이겨낼 때마다 가족들의 반대는 점점 뜨거운 응원으로 바뀌었다. 실버원정대 홈페이지(www.silverexp.com)에는 가족의 응원 메시지가 줄을 잇는다. “할아버지 최고~” “아빠의 도전이 저에게 큰 힘이 돼요” “아버님, 사위입니다. 정상 도전의 기회를 거머쥐신 아버님 존경합니다”….

이들은 훈련을 마치고 오후 늦게 북한산을 내려왔다. 눈이 다 녹아 낙엽이 훤히 드러난 산길을 걸으며 박승언(66·인천지방공무원 퇴임)씨가 말했다. “우리 8명 모두 한국에 무사히 돌아 와야지. 그때는 낙엽 대신 새파란 풀을 밟으면서 다시 산에 오르자고.” 다짐을 했다.


 

“도전하는 선배님들이 진정한 청년”

 

 ▲ 실버원정대가 지난달 초 한라산에서 적설기 훈련을 하고 있다. 대원들은 이 훈련 도중 눈사태를

     만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 한국산악회 제공

 

 

“도전하는 선배님들이 진정 이 나라의 청년입니다”, “히말라야의 보이지 않는 위대한 힘이 어르신들의 등반을 지켜줄 겁니다”….60~75세 ‘실버 원정대’ 8명이 해발 8848m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등정을 위해 오는 24일 네팔로 떠난다는 소식(조선일보 3월 7일자 A13면)이 보도되자, 7일 이들에 대한 각계의 격려가 쏟아졌다. 실버원정대 공식홈페이지(www.silverexp.com)에는 이날 90건이 넘는 응원 글이 올라와 등정 성공을 기원했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합숙 훈련 중이던 실버 원정대원 8명은 새벽부터 걸려온 격려 전화를 받느라 바빴다.

원정대원 조광현(67·해군 UDT대령 전역)씨는 오전 6시 울먹이는 딸의 전화를 받았다. 조씨는 “(가족이) 걱정할 것 같아서 정상은 안 가겠다고 말했는데 딸이 인터넷 기사를 보고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딸이 대한민국 대표 아버지를 둬서 자랑스럽다고 말할 때 간신히 울음을 참았다”고 말했다. 대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산삼배양근과 효소식품 등을 무료로 공급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산악회(회장 최홍건)는 아침부터 걸려 온 격려 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정성필(43) 사무국장은 “지원을 약속하신 분들도 꽤 됐지만, 이미 준비가 마무리돼 마음만 고맙게 받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인터넷 반응도 뜨거웠다. chosun. com에서 이방현(sampasusunin)씨는 “경기도 좋지 않고 짜증나는 사건뿐인데 아름다운 노장들의 신선한 아름다움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 같다”고 했다. 임병환(http1004)씨는 “주름 지우고 쌍꺼풀까지 하면서 젊어지려 하지만 진정한 젊음은 이런 것”이라고 썼다.

 

오는 14일 오후 6시30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실버 원정대 발대식이 열린다. 설암(舌癌) 수술로 투병 중인 원정대장 김성봉(66)씨 부인도 참석할 예정이다. 김씨는 “(아내가) 내 등에 업혀서라도 꼭 참석하겠다고 했다”면서 “아내는 병을 넘고, 나는 산을 넘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070410) 전현석 기자

에베레스트 실버 원정대 멤버

 

김성봉(대장,66)/직책:마운틴TV대표이사. 한국산악회 부회장/

          출사표: "꼭 성공해서 투병중인 아내와 더 행복하게 살겠다"

김상홍(부대장,60)/ 계명대 산악부 지도교수/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등반만 남았다."

차재현(75)/ 한국산악회 경기지부 명예회장/

          "큰 형님들의 연륜과 열정을 지켜보라"

이남진(69)/ 진도 지산중학교 교장 퇴임/

          "내 인생의 마지막이 아닌 첫 번째 흔덕을 남기겠다."

조광현(67)/ 해군 UDT/SEAL 전우회 명예회장/

          "대한민국 국민과 해군 UDT를 대표해 부끄럼없는 등정을 하겠다."

박승언(66)/ 인천 지방공무원 퇴임/

          "실버 세대9들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기필코 장상에 서겠다.

이충호(64)/ 서울증권 지점장 퇴임/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다. 후회없이 마치고 무사히 오겠다."

이장우(63)/ 경북지방경찰청 경감 퇴임/

          "꼭 성공해서 나중에 1000M 이상되는 산에서 칠순 잔치를 열겠다. "

단장: 최홍건/ 한국산악회회장(한국산업기술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