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에베레스트 실버 원정대 [3] *-

paxlee 2007. 4. 27. 22:50

 

       노익장 8명, 5300m서도 고산병 없이 ‘쌩쌩’

에베레스트 실버 원정대 베이스캠프 떠나며 1信.
무사등정 비는 라마祭 후 아이젠 날 갈며 등반준비 “할수있다”는 자신감 넘쳐있다. 목표는 6000m 캠프 내달 중순쯤 정상 도전,

 

▲ 마헨드라 조이티 중학교에서 교장선생님(뒷줄 가운데)과 기념촬영.

 

밤새 눈보라가 몰아쳤다. 텐트 천막이 찢어져 나갈 듯 펄럭거려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눈사태 소리에 깜빡 잠들었던 잠에서 깨어나 밖으로 나가 서자 에베레스트 아이스폴이 어둠 속에서도 섬뜩케 했다. 표고차 600m의 빙하에는 수많은 빙탑과 크레바스가 존재하고 있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크레바스는 밑을 내려다보는 순간 머리가 쭈뼛 서고 다리가 흔들거릴 정도로 공포를 일으킨다. 10여m 높이의 빙탑은 무너져 덮칠 듯 위압적이다. 지난해 셰르파 3명이 목숨을 잃은 아이스폴이 실버원정대가 넘어서야할 첫 번째 난관이다.

조선일보사와 한국산악회가 공동 주최한 에베레스트 실버원정대의 세계 최고봉 정상을 향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3월24일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 열흘간의 캐러밴을 거쳐 4월7일 베이스캠프(5300m)에 도착한 원정대(대장 김성봉 한국산악회 부회장)는 60세에서 75세의 대원 8명 모두 고소증을 전혀 느끼지 않은 채 구릿빛 얼굴로 건강한 상태였다. 원정대를 인솔하는 진행진의 김종호 부단장이 “고소적응을 위해 하루에 300~400m씩 높이는 것을 원칙으로 베이스캠프에 빨리 들어가지 않는다고 재촉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 쿰중 힐러리 스쿨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소변검사중인 이재승 팀닥처와 대원들.

 

현재 세계 최고봉 최고령 등정자는 지난 봄 70세 7개월에 등정한 일본인이다. 그러나 대원 전원 평균 66세가 넘는 에베레스트 원정대는 한국 실버원정대가 처음이다. 차재현 대원이 등정에 성공하면 새로운 기록이 탄생한다. 원정대는 캐러밴 첫날 차플룽의 마헨드라 조이티 중학교(Mahendra Joyti) 를 방문, 학생들을 대상으로 소변검사를 통해 검강검진을 해주고, 하행 캐러밴 때 다시 방문해 컴퓨터 10대와 프리터 2대를 기증하기로 약속했다.

 

마헨드라 조이티 중학교는 학생수 400명 규모로 에베레스트 초등자인 에드먼드 힐러리가 설립한 학교다. 원정대는 ‘셰르파의 마을’인 쿰중(3700m)의 힐러리스쿨에도 컴퓨터 15대와 프린터 2대를 기증하기로 했다. 현재 한국산악회의 지원으로 신축중인 20평 규모의 컴퓨터 교실의 개관식을 하행 캐러밴시 가질 계획이다. 원정대는 베이스캠프에 대원과 현지인들이 사용할 텐트 25동을 설치한 다음 11일 오전 6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눈보라 속에서 라마제를 지냈다.

 

라마제란 등반을 시작하기에 앞서 무사안녕을 위해 지내는 의식이다. 이틀거리에 있는 텡보체 곰파(라마사원)에서 올라온 라마승이 주도한 의식은 돌로 쌓아 만든 제단 앞에서 진행되었다. 간단한 음식을 차려놓은 제단 앞에서 라마승이 라마경전을 읽고 대원들은 안전을 기원하는 의미로 간간이 촌딜(쌀)를 뿌리고, 막판에는 참바가루(밀가루)를 뿌리면 서로의 얼굴과 옷에 발라주었다. 이어 라마 경전이 적히거나 자연을 표시한 수많은 깃발이 걸린 5색 룽다(윈드 플러그)를 4가닥 길게 늘어뜨리고, 라마승이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숭딜(가느다란 끈)을 목에 걸어주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 해발 4200m 높이의 딩보체 고원을 가로질러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실버 원정대워들. 뒤로 쿰부히말의 미봉인 탐세르쿠와 캉데가가 날카롭게 치솟아 있다.

 

원정대는 12일부터 아이스폴 등반을 시작한다. 표고차는 600m에 불과하지만 사다리를 걸 수 없을 만큼 폭이 넓은 크레바스와 높은 빙탑을 우회하노라면 캠프1(6000m)까지의 실제 등반거리는 2km가 넘는다. 이후 해발 6400m, 7300m에 캠프를 치고 사우스콜(남동릉 안부, 약 8000m)에 마지막 캠프를 설치한 다음 5월 중순 경 정상 공격에 나선다.

8명의 대원 중 맏형인 차재현(75) 대원은 89년 에베레스트 7200m까지 오른 바 있는 산악인이다. 당시 고소증 때문에 실어증을 앓기도 했지만 18년 전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재도전에 나섰다. 김성봉 대장은 출국 한 달 전 부인 김기숙 여사가 설암으로 대수술을 받는 큰일을 겪었지만 “대장이 집안일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아내의 격려로 등반에 나섰다.

 

계명대 산악부 지도교수인 김상홍(60) 부대장은 에베레스트에서 네 명의 제자를 잃은 바 있다. 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꼭 정상에 올라서야겠다는 각오다. 김성봉 대장은 “솔직히 한국을 출발할 때는 긴장되고 과연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 부담스러웠다”며 “그러나 카트만두를 출발, 에베레스트를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서는 사이 우리 모두 세계 최고봉 정상에 올라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굳은 의지를 밝혔다.

 

 

 ▲ 라마제. 대원들이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촌딜(쌀)을 뿌리고 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는 지금 30개 팀이 몰려들고 있다. 그중 한국 팀은 실버 원정대와 같은 남동릉 루트로 한국도로공사 팀(대장 박상수)과 3회째 에베레스트 등반에 나선 허영호 팀, 그리고 남서벽 신루트를 노리는 박영석 원정대 등 4개 팀이 세계 최고봉 정상을 노리고 있다.

밤새 몰아친 바람은 라마제가 끝나자마자 죽은 듯이 가라앉았다. 한밤중에는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진 베이스캠프의 기온은 10시를 넘어서면서 영상으로 올라가고 있다. 그러나 정오를 넘어서면 서서히 기온이 떨어져 다시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진다. 어젯밤에도 아이스폴이 무너져 셰르파들로 구성된 아이스폴 원정대가 보수중이다. 무너진 빙탑을 우회해 새로운 길을 내고, 크레바스에 걸쳐놓은 쇠사다리를 걸친 빙하가 주저앉으면 새로운 지점으로 다리를 옮기다.

 

▲ 라마제를 지낸 뒤 에베레스트 아이스폴을 배경으로 기념촬영한 실번워정대.

 

제단 옆에 장비를 쌓아두었던 대원들은 각자 장비를 들고 텐트로 들어갔다. 그리곤 조용히 아이젠과 피켈을 줄로 갈며 마음다짐에 들어갔다. 이들이 신는 등산화는 3중화다. 영하 30도 밑으로 떨어지는 정상부를 오를 때 동상예방을 위해 특수 제작된 등산화다. 우모복 역시 다운 함유도가 높은 특수복이다.

 

그리고 제3캠프 이후로는 압축산소가 산소통의 산소를 마시면서 등반한다. 이제 약 20시간 뒤인 12일 새벽 5시면 삼중화에 아이젠을 차고 피켈과 스틱을 잡고 아이스폴로 들어선다. 베이스캠프의 공기 중 산소 포함률은 평지에 비해 절반이다. 해발 8000m가 넘어서면 산소 함유도 3분의 1 이하로 떨어진다. ‘죽음의 지대’를 향한 노익장들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 한필석 월간산 기자 /사진 유학재 대원 [07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