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이야기

-* 와인 컨설턴트이자 제조자 미셀 롤랑(Michel Rolland) *-

paxlee 2007. 8. 2. 09:58
 
    세계적인 와인 컨설턴트이자 와인 제조자 미셸 롤랑(Michel Rolland)
  • 달나라에서도 포도밭을 가꿀 수 있다면 아마 그가 가장 먼저 날아갈 것이다. 세계적인 와인 컨설턴트이자 와인 제조업자인 미셸 롤랑(Michel Rolland•60•사진)은 1년 중 비행기 탑승횟수가 200회가 넘는다고 해서 ‘플라잉 와인메이커(flying winemaker)’로 불린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와인의 맛과 향에 대해 조언하고 있는 롤랑을 가리켜 저명한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는 ‘블렌딩(blending)의 달인’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만화 ‘신의 물방울’에 등장하는 최고급 와인 르팽(Le Pin)•샤토 몽페라(Chateau Mont-Perat)•샤토 오존(Chateau Ausone)도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세계적인 와인 산지인 프랑스 보르도(Bordeaux) 지방의 포므롤(Pomerol)에서 태어난 롤랑은 포도원을 경영하던 할아버지가 골라 주는 와인을 마시며 자랐다. 보르도대학에서 양조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컨설팅을 맡고 있는 와이너리는 13개국 100여곳, 생산 와인 종류로는 400종이 넘는다. 스페인•남아프리카공화국 등 11개국에 와이너리(winery•포도주 양조장)를 소유하고, 자신의 이름을 딴 ‘롤랑 컬렉션’ 와인 10여종을 만들고 있다.
    ‘서울국제주류박람회’ 참석차 한국을 찾은 롤랑은 “와인은 개인 취향이 중요하다”며 “지식이 부족하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 “와인은 향수와 비슷하여, 저마다 취향 달라”

    - 전 세계인들의 미각을 사로잡는 남다른 와인을 만드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제가 마술 지팡이를 휘둘러서 와인이 좋아진 것은 아닙니다. 방문하는 와이너리나 해당 국가의 기후조건,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한 균형을 찾아내려고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 지난해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인데 한국 시장을 어떻게 보시나요.

    “한국 소비자들은 와인에 대해서 관심도 많고, 와인을 마시면서 많은 즐거움을 느끼더군요. 한국 와인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 어떤 와인이 ‘좋은 와인’ 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본인이 마셔서 마음에 들고 기분 좋은 와인이 진정으로‘좋은 와인’입니다. 향수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좋아하는 향이 저마다 다르고, 실제로 뿌렸을 때도 향이 다르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전문가로서의 기준이라면, 완전히 익은 상태에서 수확해 포도 품종 고유의 최상의 맛을 낼 수 있는 와인이 좋은 와인이라고 생각합니다.”

    ■ “획일화 비판은 오해…오히려 엄청나게 다양해져”

    - 와인 산업에도 대기업 자본이 쏟아져 M&A (인수•합병)도 활발해 지면서, 농촌의 소규모 와이너리들이 죽어간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와인의 질(質)에는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소규모 와이너리를 인수•합병한 대규모 와이너리를 몇 곳 알고 있는데, 합병 후 생산방식은 중앙집중적이지만, 와인을 만드는 철학이나 질에 대해서는 전적인 자율성을 보장받고 있습니다.”

    - 와인 컨설턴트들이 세계를 누비면서, 와인 맛이 몰개성화•평준화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지금처럼 다양한 와인이 소개된 적도 없다고 생각해요. 25년 전과 지금의 비평가들의 활동을 비교해보면, 각자 연간 시음하는 와인 종류가 적어도 250종, 많게는 500종에 이릅니다.
    와인 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 ‘디켄터(Decanter)’를 보면 연간 소개되는 와인이 5000가지 이상이 되기도 합니다.”

    - 최근 투명한 병에 담긴 ‘누드 와인’ 등 유행에 민감한 와인이 속속 선보이고 있습니다. 가볍고 즐기기 쉬운 와인이 많이 나오는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일상 생활하면서 더 많이 마실 수 있도록 저가(低價)의 부담 없는 와인이 나오는 것이겠지요. 모두가 루이뷔통 가방을 살 필요는 없는 것이고, 10분의 1 가격의 중저가 가방도 나름대로 기능을 합니다. 단, 원산지가 어딘지도 잘 모르는 정체불명의 와인이라면 곤란하겠지요.”

    ■ “신의 물방울, 입문자 벽 낮추는 긍정적 효과”

    - 최고의 와인 비평가로 꼽히는 로버트 파커와 막역한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파커의 비평이 지금처럼 높게 평가받게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파커는 25년 전쯤에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에는 우리 둘 다 무명이었습니다. 유명해진 뒤에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만난 게 아니고, 와인만을 공통 분모로 비평가와 양조학자로 만났기 때문에 편한 마음으로 우정을 쌓아올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파커의 비평이 현재의 권위를 얻게 된 것은 ‘엄격함’이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의견에 동감하지 않는 사람에 휘둘리지 않고, 엄격함의 기준을 유지하면서 자기 세계를 개척해나갔기 때문에 위대한 비평가가 됐지 않나 싶습니다.”

    - 중국이나 인도에서도 막강한 경제 잠재력을 바탕으로 와이너리들이 몸집을 불리고 있습니다. 두 나라의 와인은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1994년에 인도 와이너리의 컨설팅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인도 와인 컨설팅은 제가 처음이었을 겁니다. 인도 와인은 명품은 아니지만 소비자들이 마시기에 무난하고 좋은 와인입니다. 중국 와인 맛은 아직 좀 떨어진다고 봅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화교가 워낙 많이 퍼져 있기 때문에 중국 와인의 생산•수출량은 눈에 띄게 증가할 것입니다.”

    -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이 한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일부 과장된 표현이나 현란한 수사(修辭)가 와인의 본질을 가린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저는 와인을 두고 지나치게 화려하고 시적(詩的)인 수사를 쓰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신의 물방울’은 스토리나 대화를 직접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은 힘들지만, 어느 정도의 환상은 입문의 벽을 낮추고 부담 없이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 “와인에 대해 열린 시각을 가진 사람이 진정한 애호가”

    - 와인이 비즈니스의 필수품처럼 되면서, CEO(최고경영자)들 사이에 ‘와인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와인은 개인 취향이 중요하기 때문에 지식이 부족하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한 가지 와인을 두고도 여러 의견이 가능합니다.
    식사나 접대 자리를 주관하게 됐다면 소믈리에(와인 관리 및 추천 전문가)에게 모임의 목적 등 방향을 미리 알려주고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40년 넘게 와인을 공부한 저도 소믈리에에게 추천을 부탁할 때가 있습니다.”

    - 진정한 와인애호가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와인에 대해 열린 시각을 가진 사람이 진정한 애호가입니다. 단순히 한두 잔 즐기는 게 아니라 ‘애호가’라고 불릴 정도로 발전한 사람이라면, 개방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와인에 대해서 선입견 없이 접근해야 만 특징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으니까요.”

    - 부인(Dany Rolland)도 양조학자라고 들었는데, 와인을 두고 의견차를 보인 적은 없었는지요.

    “아내는 보르도대학에서 만났습니다. 아내는 원래 의대생이었다가 양조학으로 전공을 바꿨지요. 한 와인을 두고 저는 ‘무난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농축감이 떨어진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양조학자이기 이전에 와인 애호가입니다. 서로의 감수성을 전적으로 존중합니다.”

    - 무인도에 자신만을 위한 단 한 병의 와인을 가지고 들어간다면 어떤 와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단 한 병의 와인이라…. 제 주관적인 취향이라는 것을 전제로, 고향 포므롤의 ‘르 봉 파스퇴르(Le Bon Pasteur)’를 들고 가겠습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의 와인과 함께라면 무인도에서도 고향의 향기를 느낄 수 있겠지요.”


  • ■ 김기재의 와인 품평

    ▶ 샤토 르 봉 파스퇴르(Chateau Le Bon Pasteur)는
    진하고 부드러우   며 농익은 맛이 사탕 굴리며 빨아먹는 느낌이다.

    =롤랑의 와인들은 보통 과숙한 포도로 만들어져 진하고 부드러우며 농익은 맛이 특징이다. 메를로 80%와 카베르네 프랑 20%로 블렌딩된 이 와인 역시 전반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있고 신맛도 적당해서 느끼하지 않다.

    입안에서 둥근 사탕을 굴리며 빨아먹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는 라운드함이 가장 큰 특징이다. 농익은 자두와 말린 무화과, 블루베리시럽, 달콤한 산딸기 잼과 같은 달콤한 느낌이 좋다.

    새 지갑이나 벨트에서 느껴지는 고급가죽 향으로 시작되는 이 와인은 한마디로 기품이 있다. 한 가지 흠은 값이 좀 비싸다는 것. 소비자가로 17만원이 넘는다.

    - 김기재 (와인칼럼니스트) -

 

 


▲ 세계적 와인 전문가인 미셸 롤랑이 초보자들에게 와인에 대한 조언을 말하고 있다. /채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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