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이야기

-* 역사 속의 와인 *-

paxlee 2007. 9. 8. 21:46

 

                      역사 속의 와인

 

         나폴레옹과 아이젠하워, 샹베르탱으로 축배 들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前대통령 ‘무통 로칠드’ 1등급 승격시키고,
         ‘오페라의 유령’ 작곡가 웨버 ‘샤토 라피트 로칠드’ 마니아,
         중국 후진타오는 ‘샤토 마고’ 즐겨 마신다.  

 

    • 지난 2000년 10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석차 방한한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이 환영 만찬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다.(左) 2006년 4월 2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중미 경제인 모임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와인잔을 들고 있다.(右) /AFP
    • 프랑스 샹젤리제 인근의 ‘타이유방(Taillevent)’은 파리를 상징하는 최고급 레스토랑 중 하나다. 은막을 빛냈던 수많은 스타들이 타이유방에 찾아들어 진홍빛 와인을 마시곤 했다. ‘셸부르의 우산’으로 영원히 기억되는 우아함의 대명사 카트린느 드뇌브는 ‘클로 드 부조(Clos de Vougeot)’를, 과묵한 남성상의 이미지로 남아있는 장 가뱅은 ‘포마르(Pommard)’를, 로댕의 연인 카미유 클로델을 열연했던 이자벨 아자니는 ‘제브레 샹베르탱(Gevrey Chambertin)’을 마셨다. 이런 모든 기록이 상세하게 남아 있어서 와인 애호가들을 들뜨게 만들곤 한다.

      ■ 자크 시라크의 와인, 무통 로칠드

      얼마 전 엘리제 궁을 떠난 자크 시라크 프랑스 전 대통령은 와인에 대한 일화를 많이 만들었던 정치가이다. 그가 와인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73년이었다. 농무장관이던 그는 그랑 크뤼(Grand Cru·프랑스 고급와인 품계 제도) 2등급이던 ‘무통 로칠드’를 1등급으로 승격시키는 서류에 서명, 보르도 와인업계를 뒤흔들 만한 충격을 던졌다. 2003년 대통령 때는 토니 블레어에게 무통 로칠드 6병을 생일 선물로 보냈다. 작년에는 또 다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시장 재임 시절 파리 시청에서 사두었던 와인 5000병이 경매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파리 시장이던 당시 시라크는 1년에 500회 가량 연회를 열면서 무려 1만5000병에 가까운 와인을 소비할 정도로 애호가였다. 그 와인들 중에서 1986년산 ‘로마네 콩티’가 병당 5000유로(약 640만원)에 낙찰되었던 것이다. 프랑스다운 자존심을 내세웠던 정치가답게 시라크와 관련된 와인 이야기는 뉴스가 되곤 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캐츠’로 유명한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도 막대한 양을 모았던 와인 수집가였다. 2005년 그는 그때까지 살아왔던 수집가로서의 이력을 정리라도 하려는 듯이 와인 1만7000병을 뉴욕 자키스(Zachys) 경매에 내놓았다. 하이라이트는 1811, 1832, 1864, 1865년산 특급 와인 ‘샤토 라피트(Lafite) 로칠드’였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그 외에도 최고급 부르고뉴 와인들을 다양하게 소장하고 있었다. ‘부르고뉴 와인의 신(神)’으로 불리다 작년 사망한 앙리 자이에가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1959년산 ‘리시부르(Richebourg)’, 1919년부터 총 25개 빈티지(와인생산 연도)를 모아둔 ‘콩트 조르쥬 드 보귀에(Comte Georges de Vogue)’가 만든 ‘뮈지니(Musigny)’ 등이 경매장을 화려하게 만들어주었다.

      샤토 라피트는 1868년 유럽 최대의 부호였던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사들이면서 이름은 샤토 라피트 로칠드로 바뀌게 되지만 대지(大地)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나치 독일의 2인자였던 괴링은 라피트를 혼자 따는 것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삼기도 했다니 이 와인을 두고 ‘보르도의 롤스로이스’라는 표현이 과언은 아닐 것이다.

      ■ 토머스 제퍼슨의 16만 달러짜리 와인

      미국 대통령이 되기 전 토머스 제퍼슨은 프랑스 대사를 역임했다. 미식가이자 와인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유럽 전역을 누비면서 와인을 맛보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와인을 만드는 게 꿈이기도 했다. 제퍼슨이 보르도에 방문했을 때는 맛을 보면서 자기 나름대로 등급을 매겼다. 물론 당시의 가격을 참고했으므로 완전히 주관적인 판단은 아니었다. 그때 최고로 꼽은 와인들이 샤토 라피트, 샤토 마고, 이켐 같은 와인들이었다. 이 와인들은 1855년 그랑 크뤼 분류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며 여전히 영원성을 지니고 있다.

      토머스 제퍼슨은 자신이 사들인 보르도 와인에 ‘Th. J.’라는 이니셜을 새겼다. 크리스티 경매에 1797년산 라피트 로칠드가 나왔을 때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고 최종적으로 두 사람이 남았다. 한 명은 ‘와인 스펙테이터’의 발행인 마빈 생켄(Marvin Shanken)이었고, 다른 한 명은 크리스토퍼 포브스(Christopher Forbes)였다. 크리스토퍼는 최종적으로 아버지 말콤 포브스와 통화를 나누었다. 아버지는 “제퍼슨이 마셨던 그 병을 가져오라”고 말했다. 결국 포브스 일가는 16만 달러라는 거금을 내고 와인 한 병을 사들였다. 보르도 와인이 최고 200년 정도까지 숙성 잠재력을 지닌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1797년 라피트 로칠드는 어쩌면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이 아니라, 식초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와인은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을 세운 위대한 선조들을 기념하기 위해서 포브스 컬렉션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상징인 두오모의 돔은 천재적인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의 지휘 아래 1420년 공사를 개시했다. 모든 이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을 하기 위해 일꾼들이 모두 모였을 때 교회 건축 사업단은 트레비아노 와인을 제공했다. 그들은 과일과 함께 와인을 마시면서 긴장을 풀고 두오모를 올리기 위한 첫 삽을 뜬 것이다.

      피렌체에는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바쿠스 상’이 있다. 누드의 바쿠스 상은 왼손에 술잔을 쥐고 술을 권하듯이 팔을 뻗는다. 만년은 로마에서 지냈지만 미켈란젤로도 토스카나의 맛을 잊지는 않았다. 그는 아르노 강에서 잡은 장어와 화이트 와인 베르멘티노를 곁들여서 마시기를 즐겼다. 이탈리아 통일을 이끈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왕실에서 바롤로 와인을 마시도록 했다. 그는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포도원을 지어주기도 했다. 그곳이 아직까지도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폰타나프레다(Fontanafredda)이다.
      ■ 나폴레옹과 아이젠하워를 연결시킨 샹베르탱

      1805년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 군과의 격돌을 앞두고 장교들에게 이런 말을 건냈다. “이곳은 유럽인데도 샹베르탱 와인을 한 잔도 마실 수가 없어. 이집트의 사막 한가운데에서도 항상 마셨는데 말이야.” 술이 약했던 나폴레옹은 언제나 샹베르탱에 물을 타서 마셨다. 그가 좋아하는 5~6년 숙성시킨 샹베르탱 병에는 ‘N’이라는 대문자가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었다. 나폴레옹이 모스크바에서 퇴각할 때 이 병들은 코사크 군사들에게 약탈당하고 만다. 곧이어 프랑스 시장에는 ‘러시아에서 돌아온’ 가짜 샹베르탱이 범람하게 된다. 샹베르탱은 부르고뉴에서는 남성성을 대표하는 파워풀한 와인 중 하나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총사령관이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1959년 프랑스를 방문한다.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그를 환영하는 인파가 파리 시내를 뒤덮었다. 이때 만찬에 제공된 와인 중에는 루이 라투르(Louis Latour)에서 생산한 1945년산 샹베르탱이 있었다. 해방을 맞이한 해에 만들어진 와인은 아이젠하워에게도 뜻깊었을 것이다. 나폴레옹과 아이젠하워, 두 전쟁 영웅이 한자리에서 만난 적은 없지만 한 병의 와인으로 어떤 공감대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무명 와인이었던 프랑스 보르도 포므롤(Pomerol) 지방의 특급와인 ‘페트루스(Petrus)’가 신데렐라처럼 떠오른 것은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에 선물로 보내지면서부터이다. 이 와인이 대서양을 건너가 백악관으로 들어가고 케네디 일가의 사랑을 받았다.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이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와인이 된 페트루스는 이후 보르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이라는 자리를 확고히 했다.

      와인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중국 지도자들도 실은 와인 마니아가 많다. 후진타오는 2004년 초 프랑스 방문 때 ‘샤토 마고’에 들러 포도원을 둘러보고 시음을 했다. 샤토 마고 오너(owner)인 코린 멘첼로풀로스는 후진타오에게 자신의 샤토에 방문한 이유를 물어보았다. 후진타오는 “부인, 당신은 아주 유명하십니다”는 짧은 말로 대답했다고 한다. 중국 공산당 지도자 중, 중국 국내파인 마오쩌둥과는 달리 프랑스 유학파인 저우언라이와 덩샤오핑은 귀국 후에도 와인과 치즈, 크루아상을 즐긴 것으로 유명하다.

      2000년 6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찬에서 내놓은 와인은 샤토 라투르(Latour)였다. 김정일 위원장은 한 병에 수백만원에 달하는 이 특급와인을 외교 채널을 통해서 구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와인을 좋아해서 특급와인을 고루 구입해야 하고, 그 중에서도 라투르를 역사적인 만찬용으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강건한 맛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라투르가 김정일 위원장이 추구하는 카리스마와 일치하는 것은 아닐까.


    • 名士들이 좋아하는 와인 어떤 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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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클로 드 부조(Clos de Vougeot)=프랑스 부조 마을에 있는 그랑 크뤼(grand cru) 포도원으로 12세기부터 수도사들이 와인을 만들어 왔다. ‘클로’(Clos)는 ‘울타리를 친 밭’을 뜻한다. 수도사들이 관리를 위해서 담을 쌓았기 때문이다. 로마네 콩티, 샹베르탱, 뮈지니와 함께 부르고뉴를 대표하는 최상급 레드 와인이다.

      ▲ 무통 로칠드(Mouton Rothschild)=1855년 만들어진 보르도 그랑 크뤼 분류에서 유일하게 등급이 상승한 와인이다. 이는 와인 역사에서 가장 파격적인 사건 중 하나였다. 매년 다른 화가의 그림이 라벨을 장식하는 ‘디자인 마케팅’으로 유명하며, 캘리포니아에서는 로버트 몬다비와 손잡고 ‘오퍼스 원’을, 칠레에서는 콘차 이 토로와 함께 ‘알마비바’를 생산하면서 국제적인 세를 과시하고 있다.

      ▲ 라피트 로칠드(Lafite Rothschild)=보르도에서 가장 균형미가 좋다고 알려진 와인이다. 1855년 그랑 크뤼 분류 당시에 보르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이기도 했다. 무통 로칠드와 마찬가지로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사들였으며, 현재까지 같은 가문에서 와인을 만들고 있다.

      ▲ 리쉬부르(Richebourg), 앙리 자이에(Henry Jayer)=리쉬부르는 프랑스 본 로마네(Vosne Romanee) 마을에 있는 특등급 포도원이다. 로마네 콩티 북쪽으로 이어져 있는 밭이다. 로마네콩티(DRC), 르루아(Leroy), 그리고 앙리 자이에 등 소유주들이 있어서 여러 도메인(domaine·주로 부르고뉴 지방의 와인생산자) 이름으로 와인이 생산된다. 앙리 자이에는 현대적인 방식으로 와인을 만들면서 부르고뉴 와인의 파워를 증대시켰고, 젊은 양조자들에게 그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 극찬을 받았다.

      ▲ 뮈지니(Musigny), 콩트 조르쥬 드 보귀에(Comte Georges de Vogue)=뮈지니는 부르고뉴에서 가장 우아한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적이고, 화사하며 향긋하다. 콩트 조르쥬 드 보귀에는 1400년대부터 부르고뉴에 정착해서 와인을 만들어온 명가이다.

      ▲ 오 브리옹(Haut-Brion)=보르도 그라브 지역을 대표하는 맹주. 미국계 은행가인 딜롱(Dillon) 가문에서 취득했으며, 현재는 손자인 룩셈부르크 공이 소유하고 있다. 프랑스 외무장관이던 탈레이랑이 소유하고 있던 당시에는 비엔나 회의에 가져가서 접대를 했다는 전설이 남아있다.

      ▲ 샹베르탱(Chambertin)=프랑스 제브레 샹베르탱 마을에서 생산되는 최고의 와인. 로마네 콩티와 더불어 부르고뉴에서 가장 강건한 레드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남성적이며 강력한 향기, 고급스러움에서 부르고뉴를 대표한다.

                                - 글 / 고형욱 와인칼럼니스트 / 쉐벵상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