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샤팡마-초오유 첫 연속도전 실패 정부로부터 입산허가를 받아놓았던 대한산악연맹(회장 임철순)과 한국히 말라얀클럽(회장 박철암)이 각기 티베트에 있는 시샤팡마(8,013m)와 초 오유(8,201m)를 연속으로 등정하겠다고 나섰다. 이 원정은 최초의 티베트 진출이자 8천미터급 2개봉 연속등정이었기 때문에 한국방송공사와 서울 방송이 취재진을 파견하는 등 국내 관심도가 높았다. 결과는 두 팀 모두 연속 도전에는 실패한 채 대산련팀이 시샤팡마를 등정하는데 그쳤다. 그 러나 이들의 첫 진출은 향후 2개봉 연속등정 가능성을 한층 높여주었다.
-초오유원정대는 네팔에서 육로로 중국 국경을 넘어 먼저 시샤팡마 베이 스캠프에 도착했다. 김명수대장(46)을 비롯해서 전국에서 선발된 장봉완 부대장(38), 김재봉(33), 윤길수(33), 곽상태(33), 김창선(31), 엄홍길(31), 김재수(30), 이주이(30), 홍경표(29), 최정길(27), 최병수(27), 고상현(26), 강신원(24), 김수야대원(23) 등 모두 15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원정대였다.
은 산이면서 또한 중국 국경 안에 위치한 관계로 14좌 중 가장 늦은 1964 년에야 중국대(대장 허경)가 초등정한 산이다. 산명은 티베트어로 ‘황량한 땅’ 즉, 기후가 나빠 작물과 가축이 살 수 없는 장소를 의미한다. 이 산을 네팔에서는 ‘고사인탄’이라고도 부르는데 이것은 카트만두에서 북쪽으로 50여 킬로미터 떨어진 힌두 성지 ‘고사인쿤드’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사 인쿤드는 힌두어로 ‘성자의 거주지’를 의미한다.
진 반면에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는 북북동쪽으로 불과 85킬로미터밖 에 떨어져 있지 않아 대산련팀은 육로를 통해 티베트로 들어가기로 했다. 랑탕 지역에서 고소적응을 마친 대산련팀은 9월 23일 시샤팡마 남쪽 베이 스캠프에 도착했다. 남벽에서 한국대가 택한 루트는 82년 영국의 더그스 코트 일행이 오른 중앙 암릉의 직선루트였다.
30일 이 루트 5,800미터 지점에 제1캠프를 설치하고 10월 2일부터 본격적 인 벽등반에 들어선 이들은 5일 7,100미터 지점까지 고정로프 설치를 마 쳤다. 그리고 1차 정상공격조로 지명된 김창선, 김재수대원이 6일 아침에 1캠프를 출발하여 7,100미터 지점까지 올라 설동을 파고 비박을 했다. 표 고차 1,300미터를 9시간에 걸쳐 올라간 것이다. 10월 7일, 두 사람은 동 이 트기 시작한 7시 40분에 비박지를 출발, 정상을 향했다. 그러나 이들은 몸을 날려보낼 것 같은 바람과 혹독한 추위를 견디다 못해 오전 11시경 다시 설동을 팠다.
3시간이나 걸려 만든 설동에서 이들은 결국 침낭도 없이 하룻밤을 더 묵어 야 했다. 바람이 잦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바람이 약해진 틈을 타서 정상공격을 재개한 이들은 오전 10시경 마 침내 시샤팡마 정상에 섰다. 두 대원이 시샤팡마 등정에 성공하자 대산련 팀은 초오유 등정을 위해 서둘러 이동했다. 이들이 초오유 베이스캠프(5, 100m)를 거쳐 전진베이스캠프(5,700m)에 도착한 것은 10월 20일, 여기 서 허영호등반대장이 이끄는 히말라얀클럽팀을 만났다. 그들은 7,600미 터까지 고정로프를 설치하고 10월 16일 정상공격을 시도했으나 8,000미 터 지점에서 후퇴한 후였다.
도, 그리고 라사를 경유해 초오유 베이스캠프에 들어왔다. 이들은 62년 국 내 최초로 히말라야 원정대를 결성한 바 있는 박철암단장(65)과 오인환대 장(45)을 포함, 8천미터급 3개봉 등정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허영호등반대 장(37), 그리고 이시웅(35), 김춘기(35), 김범택(28), 홍윤기(25), 이선호 (25), 이기웅대원(55)과 서울방송에서 파견한 두 명의 기자를 포함해서 모 두 11명으로 구성되었다.
상공격을 감행했으나 이번에도 거센 눈보라를 이기지 못하고 서릉 8,100 미터 지점에서 또다시 돌아서고 말았다. 이들은 시샤팡마 등반을 위해 더 이상의 등반을 포기하고 하산했다. 이미 본격적인 초오유 등반에 들어간 대산련팀도 10월 25일 3캠프(7,200m)를 설치하고 29일 엄홍길, 김창선과 셀파 1명이 정상공격에 나섰으나 7,400미터 록밴드 밑에 도달하는 데 그 쳤다. 한편 시샤팡마로 이동한 히말라얀클럽팀은 1캠프까지 올랐으나 때 는 이미 11월을 넘겨 계속되는 악천후를 견디다 못해 두 번째 목표도 포 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한국 2개 팀의 첫 티베트 진출은 시샤팡마 남 벽 등정으로 만족하며 막을 내리게 되었다. |
안나푸르나 눈사태로 6명 사망 졌다. 안나푸르나는 83년부터 통산 4회의 한국팀 원정이 있었으나 등정성 과를 확실히 거둔 원정은 없었다. 특히 84년 겨울 등정이 불확실함에 따 라 한국산악계의 등정과제로 떠올랐다. 대산련 인천연맹이 파견한 안나푸 르나원정대는 고용철대장(59)을 비롯, 전재영등반대장(32), 이제심(54), 배승렬(33), 안성진(37), 이상구(28), 이석주(26), 송동선(24), 배의식(30), 이충환(27), 홍헌(26), 이명근대원(25) 등 12명으로 구성되어 8월 22일 베 이스캠프(4,300m)에 도착했다.
9월 7일에는 더치립 상단부에 2캠프(6,300m)를 설치했다. 여기서부터는 눈사태 발생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여기저기서 크고작은 눈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 와중에서도 루트공작은 계속되어 17일에는 3캠프(6, 900m)를 설치하고 다음날 7,300미터까지 진출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9월 19일 이상구, 이석주대원과 셀파 6명이 4캠프 설치를 위해 떠났다.
셀파 4인은 4캠프를 설치하고 되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로부터 5시간 후 공격조는 7,500미터 4캠프 예정지까지 올라 베이스캠프와 교신을 했다. 그곳에서는 완만한 경사의 설사면을 오르면 정상에 닿을 수 있어 보였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엄청난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1시 35분, 굉음 과 함께 대규모 눈사태가 안나푸르나 북면을 휩쓸었다.
강풍에 의해 발생한 표층 눈사태가 7,500미터 지점부터 6,400미터까지 쓸어내려갔다. 마침 4캠프지에 도착해 있던 8명의 대원과 셀파는 뒤범벅 이 되어 눈사태에 휩쓸려 내려갔다. 한참만에 셀파 2명만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나 이상구,이석주대원과 셀파 4명은 끝내 눈사태 속에 묻혀 불 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이로써 5번째로 시도한 한국의 안나푸르나 도전 은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비극으로 끝이 났다. |
한국 6개 팀 몰린 겨울철 네팔히말라야 를 기록했다. 이 시즌에 네팔을 찾은 외국대 수는 모두 12개 팀인데 한국 대가 절반인 6개 팀을 차지한 것이다. 에베레스트 집중 현상은 여전해 동 국산악회와 대구 지봉산악회 등 2개 팀이 도전장을 냈고, 7천미터급에서 팡(7,647m)에 강원대산악회와 캉세르캉(7,485m)에 대륜고OB회 등 2개 팀이, 그리고 6천미터급 산에서는 도르제락파(6,990m)에 명지대, 아마다 블람(6,812m)에 서울교대산악회 등 2개 팀이 등반활동을 펼쳤다. |
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 동국산악회 동계 에베레스트원정대 지봉산악회 동계 에베레스트원정대
겨울 6개 팀 중에서 가장 먼저 출국한 동국대 에베레스트원정 대는 11월 12일 쿰부빙하에 도 착했고 지봉산악회팀은 18일에 도착했다. 이 시즌에는 한국 두 팀과 남서벽 동계초등을 노리고 들어온 일본대를 합쳐 3개 팀밖에 없었다. 제 2캠프까지는 등반루트 가 모두 같았으므로 3개 팀은 공 동으로 루트를 만들어나갔다.
3개 팀이 남서벽 바로 아래 2캠 프 설치를 완료한 것은 12월 2일, 여기서부터는 지봉산악회가 노멀루트인 남동릉을 오르기 위해 로체 페이스로 붙었고, 동국대팀은 남릉(사우스 필라)의 줄기를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동국대팀은 이인정단장(47)과 김 광진대장(42)을 비롯해서 박영석등반대장(29), 김규만(34), 이민호(29), 한해식(29), 남원우(27), 배경호(27), 이전석(24), 박용식(21), 유진욱대 원(23) 등 11명으로 구성되었다.
팀은 다음날 곧바로 정상공격에 들어갔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밤 0시 20분 일찌감치 마지막 캠프를 떠난 박영석, 한해식대원 과 셀파 2명은 남릉루트를 버리고 남동릉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여기서 셀파 1명과 한해식대원이 차례로 포기하고 돌아섰다. 나머지 박영석등반 대장과 셀파 1명은 어둠 속에서 등반을 계속하다 새벽 6시 50분, 고도 8,700미터 지점에서 더이상 추위와 거센 바람을 이겨내지 못하고 돌아 서고 말았다.
악회팀은 12일 예정이던 1차 정상공격을 무위로 끝냈다. 이들은 김특희 대장(46)의 지휘아래 변준석(34), 신병석(29), 송종길(26), 윤석길대원 (29) 등 5명으로 짜여진 조촐한 원정대였는데 사우스 콜에 4캠프를 설치 했으나 대원들이 이미 지쳐버려 1차 공격을 포기한 것이다. 89년 겨울에 얄룽캉(8,505m) 동계초등정을 이끌었던 김대장은 마지막 정상공격을 결 정했다. 동국대가 2차 정상공격을 시도한 20일 자정, 송종길대원과 셀파 2명도 사우스 콜을 떠났다. 동국대는 8,300미터에서 후퇴했으나 이들은 등반을 계속해 새벽 4시경에 8,600미터 지점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여기 서부터는 날씨가 악화되기 시작했고 대원들도 지쳐 더이상 등반을 할 수 가 없었다. 이로써 겨울 혹한을 택해 최고봉의 정상에 오르려던 두 팀의 계획은 아깝게도 실패로 끝이나고 말았다. |
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 명지대산악회 동계 쥬갈히말 도르제락파원정대
91년 동계원정 중에서 가장 큰 성과는 명지대팀이 이룩한 도르 제락파(6,990m) 동계초등이었다. 이 산은 네팔 중부의 쥬갈히말 지역 에 위치하는데 81년에 일본대가 서 릉을 통해 초등정한 후 82, 85년 다시 일본대가 제 2, 3등을 기록했고, 86년 에는 서독대가 네 번째 등정을 한 후 명지대팀이 겨울철로는 최초의 등정을 이룩한 것이다. 산명 도르제락파(Dorje Lhakpa)는 티베트의 라사 지방 토착신 이름에서 비롯된 것인데 셀파들이나 티 베트인들이 이와 동일한 이름이 많다.
월 2일부터 등반에 나섰다. 4일에는 제1캠프(5,200m), 7일에는 서릉이 시 작되는 지점에 2캠프(5,800m)를 설치했다. 12월 12일 강풍이 잠시 약해 진 틈을 타서 6,350미터 지점에 세 번째 캠프를 설치했고 다음날 곧바로 정상공격을 시도했다.
송대장을 포함한 대원 4명 전원과 셀파 1명이 참여한 이 공격에서 추위와 바람과 싸우며 전진하던 이들은 오후 2시 20분 6,750미터까지 도달했으 나 그곳에서 정상을 왕복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판단, 과감히 후퇴를 했 다.12월 16일, 이번에는 송대장과 정대원이 셀파 1명과 함께 두 번째 공격 에 나섰다. 추위와 바람 때문에 아침 6시 30분에야 캠프를 출발, 먼저 설 치한 고정로프 덕분에 운행이 빨라 6시간 만인 12시 30분에 마침내 정상 에 올라섰다. 등반 개시 14일 만에 이룩한 동계초등 쾌거였다. |
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 서울교대산악회 동계 아마다블람원정대
한편 또다른 6천미터급 산 아마다 블람(6,812m)에 도전한 서울교대팀 도 두 차례에 걸쳐 2명의 대원을 올 리는 데 성공했다. 아마다블람은 한 국팀이 이미 83년에 남서릉으로 국 내 첫 등정을 기록한 이래 88년 봉암 산악회에 의해 국내 두 번째 동계등정 이 이루어졌었다.
호(44), 김광선(33), 박경이(여·26),유병철대원 등 5명은 12월 5일 4, 900미터의 베이스캠프에 들어왔다. 6일부터 등반을 개시한 일행은 7일 제 1캠프(5,880m), 12일에 2캠프(6,200m)를 설치했다. 이어서 13일에 3캠프 (6,500m)를 설치했고 15일에 유병철대원과 셀파 1명이 함께 등반중이던 오스트리아팀 대원과 정상공격을 감행, 오전 11시 58분 용마루에 섰다. 그리고 12월 19일에는 홍일점 박경이대원이 셀파 2명과 두 번째 등정에 성공함으로써 이 산을 등정한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
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 대륜고산악회 동계 캉세르캉원정대
7천미터급에서 난이도가 높기 로 유명한 캉세르캉(7,485m)과 팡(7,647m)에 출사표를 던진 두 한국대는 동계 특유의 기후를 이겨내지 못해 돌아서야 했다. 두 봉우리 모두 안나푸르나 주봉 에서 뻗어나온 능선상에 있는 위 성봉인데 독립봉의 면모를 갖추 지 못한 관계로 등반대들이 많이 찾지 않는 산이었다. 특히 동계 시즌에는 어느 팀도 오르지 않은 미답의 상태로 있었다. 캉세르캉(Kangser Kang)은 86년 이전에는 록 노어(Roc Noir)란 불란서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1950년 안나푸르나를 초등정한 모리스 엘조그가 틸리초호수에서 바라다본 이 산의 형상이 ‘검은 바위’로 이루어 져 있어 붙인 이름이다.
최초 등정은 69년 서독대가 이루었고 그후 81년에 스웨덴 팀이, 84년에 프랑스-벨기에합동대가 동릉을 경유해 올라 모두 세 번의 등정만을 기록 했다. 이동명대장(47)을 비롯 조수영등반대장(40), 김종덕부대장(42), 조경표(36), 김화수(30), 이수진(28), 김세한(21), 김종욱대원(17) 등 대륜고산악부 졸업생으로 구성된 한국대는 이 산에 대한 등반자료를 입수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12월 4일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이들은 8일 에 제1캠프(5,300m), 13일에 2캠프(6,500m)를 설치했으나 여기서 예기 치 않은 난관에 부딪혔다. 3캠프로 가는 길목에 커다란 아이스 폴과 크 레바스가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어 극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다음날, 사다리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대장은 철수를 명령했다. |
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 서도 카라반을 강행해 11월 26일 이 산의 남쪽 기슭에 베이스캠프(4,200m) 를 건설했다. 유재형대장(44), 변광제부대장(44), 김준형(40), 엄상빈(39), 정계조(38), 최승조(38), 용석만(28), 장동일(27), 황경로(31), 이상완(29), 이주용대원(24) 등 11명은 안나푸르나 위성봉 중에서는 가장 어렵기로 정 평이 나 있는 이 산의 동계초등을 노리고 남동릉 설벽에 붙었다.
하는데 1956년 봄에 마차푸차레봉을 정찰하던 영국의 로버츠가 핑거(Finger ; 손가락)라고 명명한 것이 변한 것이다. 이 산은 75년과 79년 봄에 오스트리아대가 남쪽 안나푸르나빙하에서 2,000미터에 달하는 암릉을 올랐으나 6,500미터 에서 패퇴했고, 79년 가을에는 이태리대가 동쪽 에서 주능선 6,350미터에서 돌아선 난이도 높은 산이었다. 결국 80년 봄에 재도전한 오스트리아 대에 의해 초등정되었으나 그 후 한국대가 도전 할 때까지 재등이 되지 않고 있었다.
945m)를 등정하며 고소적응을 한 강원대팀은 12 월 8일 제1캠프(5,100m), 그 이틀 뒤에는 2캠프 (5,500m)를 설치하고 그곳부터 동북쪽 벽을 공 략하기 시작했다. 7일간에 걸쳐 1,200여 미터의 고정로프와 30여 개의 하켄을 사용한 끝에 6, 100미터 지점에 3캠프가 설치되었고 20일에 는 주릉상의 4캠프 지점(6700m)에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 이때부터 날씨가 악화되고 눈이 내려 등반을 중단했다가 12 월 31일 4캠프에 올라섰으나 이미 히말라야의 겨울 날씨는 이들에게 정 상공격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해를 넘긴 1월 1일, 거센 바람을 견디다 못한 공격조 이상환, 장동일대원은 6,800미터를 최고 도달지점 으로 하 고 돌아서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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