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에베레스트 등정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

paxlee 2007. 10. 11. 22:08

 

 

         에베레스트 한국 첫 등정 30년,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최고봉 다음은 난코스와 거벽의 시대
▲ 1977년 9월 15일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고봉 정상에 선 고상돈 대원. 가슴에 매단 구식 대형 무전기가 이채롭다. 그는 2년 뒤 북미 최고봉 매킨리를 등정하고 내려오다가 추락사했다.

1977년 9월 15일 12시50분, 고상돈 대원은 셰르파 펨바 노루부와 함께 한국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그는 세계 58번째 등정자가 됐고, 한국은 8번째 등정국으로 기록되었다. 당시 원정대는 김영도 대장이 이끄는 18명의 대원으로 구성됐다. 그 뒤 30년, 한국에서는 총 64개 팀 600여명이 에베레스트에 도전해 95명이 성공했다. 사망자는 셰르파(8명)를 포함해 17명이다. 미국, 영국, 일본, 스페인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은 등반대와 등정자를 기록한 나라가 되었다.


요즘 에베레스트는 ‘상업등반’의 시대다. 많은 시간과 비용, 복잡한 절차와 고통을 줄여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 가이드를 앞세우고, 셰르파가 짐을 운반하며, 미리 설치된 고정 로프와 산소마스크로 과거보다 쉽게 오른다. 재작년엔 제트엔진을 단 헬기 유로콥터(Eurocopter)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착륙했고, 곧 관광상품화될 예정이다. 히말라야의 돌 하나, 눈 한 번 밟지 않고 정상에 서는 것이다.

 

그렇다고 산악인들이 에베레스트를 일반인에게 내주고 떠난 것은 아니다. 산악인들의 목표가 에베레스트 정상만일 수는 없다. 그들은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난코스를 찾아서 혹은 미지의 거벽(巨壁)을 찾아 새로운 알피니즘을 추구해간다. ▒


▲ 각국에서 온 산악인들로 붐비는 에베레스트 정상 아래의 마지막 캠프(C4)를 출발, 남동릉을 통해 정상에 오르는 과정. 30년 전 각고의 노력 끝에 한두 명이 겨우 오르던 시절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만 64팀 600명 도전, 95명 정상에


요즘 에베레스트는 등반 자체의 추구보다 각종 모험의 경연장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스키·패러글라이더 활강, 부부 등정과 부자 등정, 16세 소년의 등정과 70세 노익장의 등정, 정상에서 텐트를 치고 21시간 체류하기, 시각장애인 등정과 두 발을 잃은 장애우의 등정, 정상에서의 결혼식, 그리고 해마다 경신되는 최단시간 등정기록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에베레스트 초등 루트 15곳 가운데 한국인이 시도하지 않은 루트가 9곳에 이르고, 등정자를 낸 루트는 5곳에 불과하다. 그나마 소수 루트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 세계적인 추세와는 다르다. 1953년 영국팀의 초등 루트이자 1977년 한국팀의 초등 루트인 남동릉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총 30개 팀이 남동릉에 도전해 동계등정, 무산소등정, 실버원정대 등 20개 팀이 성공했다.

 

이 밖에 영국과 중국의 12차례에 걸친 경쟁적 시도 끝에 1960년 중국이 겨우 성공한 티베트쪽 북릉~북동릉은 한국에서는 1993년 허영호 대장과 셰르파 나티가 오른 후 20개 원정대가 도전해 17개 팀이 성공했다. 1975년 영국팀이 초등한 남서벽은 한국에서 8개 팀이 도전했으나 여섯 차례의 실패를 거쳐 1995년 1개 팀만 성공할 수 있었다.


한편 오랜 기간 ‘정신 나간 사람만이 도전할 수 있는 루트’라던 동벽(캉슝 페이스)은 1983년 미국팀이 초등한 이후 1999년 한국도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그런가 하면 한국인 최초 등정의 진위 여부가 20년 가까이 논란 중인 코스(서릉 직등 루트)도 있다. 1980년 폴란드팀이 처음 오른 남릉은 1988년 김창선·엄홍길 두 대원이 변형 루트인 남릉~사우스콜~남동릉을 통해 올랐다. ▒
 

▲ 난코스로 악명 높은 히말라야의 대표적 고봉들. 위로부터 마셔브룸 동벽, K2의 아브루치 능선, 그리고 낭가파르바트의 루팔벽.

6000m대 선망의 난코스도 수두룩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히말라야의 8000m급 봉우리가 등정된 후, 전문 산악인들의 관심은 6000~7000m대의 신(新)루트 혹은 거벽(巨壁) 등반으로 전환됐다. 세계적 알피니스트들이 선망하는 난코스는 히말라야에도 수두룩하다. 파키스탄 마셔브룸(Masherbrum·7821m) 동벽은 히말라야에서 미등으로 남은 가장 매력적인 벽이다.


특히 7200m에서 정상까지의 상부 벽이 그렇다. 마셔브룸은 1960년 미국대가 남동벽으로 초등했고, 북릉과 북벽을 연결하는 오스트리아·일본의 2개 루트도 1985년에 개척됐다. 동벽은 러시안 빅월 프로젝트팀이 2006년 시도에서 6500m까지 올랐을 뿐 미답의 처녀지다. K2(8611m)는 1954년 이탈리아대가 초등한 완전 피라미드형 산이다. 한국은 1986년부터 8개 팀이 시도해 23명이 등정했고 4명은 사망했다.


남서벽에는 1981년 일본대의 루트도 있다. 문제는 서벽. 서벽은 1980~1990년대 세계 최고의 히말라야니스트인 폴란드인 보이첵 쿠르티카의 마지막 꿈이었다. 하지만 그의 네 차례 도전에도 손을 잡아주지 않다가 올해 러시아팀에 직등을 허용했다.


파키스탄 낭가파르바트(8125m)는 1953년 헤르만 불이 단독으로 등정했다. 과제로 남은 것은 마제노 능선(Mazeno Ridge)이다. 어렵고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멋진 종주 대상지다. 마제노 라(Mazeno La·5377m)에서 6800~7100m에 이르는 7개 피크를 넘어 정상까지 장장 15㎞에 달한다. ▒


▲ 히말라야의 대표적인 거벽들. 왼쪽은 트랑고 타워와 등반 모습, 오른쪽은 아민브락.

 

기술·담력 필수인 거벽들이 기다린다


높이에서는 8000m급 고봉들에 미치지 못하지만 실제 등정에 있어 훨씬 고도의 기술과 장비를 요하는 거벽들도 곳곳에 산재해 있다. 대표적인 것이 트랑고 및 울리비아호 주변의 산군(山群). 트랑고 빙하 주위의 트랑고 그레이트 타워(6284m), 트랑고 네임리스 타워(6239m), 울리비아호 타워(6109m), 쉽튼 스파이어, 하이나브락, 캣츠이어 스파이어, 그리고 후세 계곡 낭마빙하의 아민브락(6000m) 등이 이른바 ‘대암벽등반’ 대상지이다. 신루트 개척의 여지가 많고, 한국대의 활동도 늘고 있다. 근래에는 인공등반으로 개척된 루트를 자유등반으로 오르거나 아예 자유등반으로 신루트를 개척하려는 이들도 적잖다.


난공불락의 거벽에서 라톡Ⅰ(LatokⅠ·7145m) 북벽 스퍼를 빼놓을 수 없다. 파키스탄 발토로 빙하로의 캐러밴 출발지에서 졸라브리지를 거쳐 촉토이 빙하(Chocktoi Gl)에 닿으면 그 건너에 거의 수직으로 무려 2500m나 솟은 벽이다. 1978년 미국팀의 첫 시도 이후 영국, 폴란드, 일본이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네팔 눕체 북벽에서 기량을 한껏 뽐내던 아르헨티나 출신 미국인 베네가스 쌍둥이 형제가 2004년에 이어 2005년에 거푸 시도했지만 무위로 끝났고, 올 들어 차보트의 미국팀 또한 오르지 못한 미답의 성(城)이다. ▒

2500m 수직봉 라톡Ⅰ은 아무도 못 올라

산악인들이 동경하는 거벽이 히말라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미 칠레 파타고니아의 파이네는 빙하와 호수, 넓은 초록의 평원, 그리고 도열하듯 선 거대한 화강암 침봉군으로 이뤄져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가 선정한 ‘꼭 가봐야 할 세계의 여행지 50곳’ 중 한 곳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때로는 미친 듯 불어대는 바람의 땅이다.

▲ 거대하게 도열한 칠레의 파이네 산군(山群). 산악인들이 가장 동경하는 도전의 대상 가운데 하나다. 오른쪽 사진은 모두의 도전을 뿌리친 미답의 성(城) 라톡의 산군.

 

파이네 등정에 먼저 열을 올린 등반가들은 이탈리아인이었다. 1958년 장 비치(Jean Bich) 등 4명이 중앙봉과 북봉 사이의 고개를 거쳐 남릉 경유 북봉 초등을 한다. 다음 과제는 미학적으로도 완벽한 모습인 중앙봉. 영국 또한 중앙봉을 목표로 베리 페이지(Barrie Page)를 대장으로 내세워 1962년, 1963년 시즌 도전에 나선다. 당시 영국 최고의 등반가 돈 윌란스(Don Willance)와 크리스 보닝턴(Chris Bonnington)이 동행했다.

 

이렇게 같은 시즌 이탈리아팀과 영국팀이 동시에 베이스에 들어왔고, 사상 첫 등정을 놓고 한 판 국가적 경쟁이 벌어졌다. 두 팀은 합동등반 협상에 들어갔지만 의견을 좁히지 못해 각자의 길로 나섰다. 결국 남십자성(Cruz Del Sur)의 영광은 영국에 돌아갔다. 한국은 올 1월, 김창호·최석문조가 이 윌란스-보닝턴 루트를 속도등반으로 단 하루 만에 등정하는 기록을 세웠다. ▒


             / 호경필 한국산악회 편집위원
             /  김창호 히말라야연구소 소장
             /  사진 = 양정고 원정대·호경필·김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