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 토요 산행을 하다.
언 제 / 2007, 02, 09. 토요일 오전 10시에 집에서 출발...
교통은 / 172번 -> 120번 버스로 우이동 종점까지...
누구랑 / 달랑 혼자서...
산 은 / 삼각산이라고도 하고, 북한산이라고도 부름...
어디서 어디까지 / 우이동 능선 매표소에서 -> 승가사 지나 구기동까지...
날씨는 / 맑았다 흐렸다 변득도 부리고, 백운대에선 눈이 날리기도 하였음.
기온은 / 아침에 영하3.6도... 백운대 온도계는 영하5도였음.
산객은 / 많은 편이었음.
능선길 / 도선사가 보이는 곳까지 오르막 길에서는 땀이 흐르고 숨이 차기도
하였음.
하루재 / 도선사길과 만나는 곳에서 한 번 쉬었다. 귤 하나 까먹으며 하루재
/ 깔닥고개를 올라갔음...
재 넘어길 / 눈이 쌓여있고, 얼음이 깔려있어 미끄러웠다.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우이동 산악경찰구조대 / 새 집으로 잘 지어놓아 보기가 좋았다.
계곡길 / 계곡 오르막 길은 매우 미끄러웠다.
백운산장 / 쉬어가는 산객이 야외 벤취를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위 문 / 위문까지 오르는 길도 눈과 얼음이 그대로 깔려있었다.
백운대 / 백운대를 오르는 길도 많이 미끄러웠다. 오르고 하산하는 산객으로 지체...
/ 날이 흐려 조망이 좋지않았다. 삼각산과 북한산에는 흰 눈이 그대로...
/ 백운대 정상에 서니 12:30분이다. 눈 발이 날리고, 상고대는 조금 연출...
/ 이은상님의 산악인의 선서비가 서있는 백운대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와서
/ 눈 녹은 바위에 앉아 컵라면 하나 먹고, 쉬다가 12:50분 쯤에 하산...
/ 오늘은 만경대길과 염초봉길, 그리고 인수봉에는 산객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위문 / 위문의 본래 이름은 백운봉암문이다.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의 안부에
/ 위치하고 있으며, 북한산성 성문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
/ 다. 위문은 일제시대 때부터 그렇게 불리어 왔다고 한다.
/ 위문을 지나 만경대 우회길을 돌라가는데, 이 길은 위문을 올라온 길
/ 보다 더 암벽길이고, 미끄러워 고생길이었다.
노적봉안부/ 힘들게 노적봉안부에 이르면 내려가는 길이 조금 급경사가 져 있지만,
/ 미끄러운 길은 끝이다. 용암문까지는 가볍게 갈 수 있는 길이다.
용암문 / 본래 이름은 용암봉암문으로 무인 대피소인 지금의 북한산장 부근
/ 만경대 줄기 아래 용암봉 기슭 해발 580m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 용암문에서 하산하면 도선사로 내려가게 된다. 북한산성은 이곳에서
/ 시작하고 있다.
북한산장 / 북한산장은 무인 대피소이다.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할 수 있고, 약수
/ 터가 있고, 화장실도 설치 되어있다.
동장대 / 북한산성의 지휘소로 성안의 지형이 높은 곳에 설치한 건물이다.
/ 성안의 14성문의 가운데 동장대(동쪽) 남장대, 북장대가 있다. 그중
/ 동장대가 그 규모가 가장크고, 성의 안팎을 모두 살필 수 있는 지점에
/ 위치해 있다.
대동문 / 동장대와 보국문 사이에 있으며, 이곳에서 하산하면 우이동 4,19탑이
/ 있는 우이동 아카데미하우스 쪽으로 하산하게 된다.
보국문 / 정확한 본래 이름은 동암문으로 대동문과 대성문 사이의 해발 567m
/ 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금의 문은 1993년에 문루를 갖추어
/ 복원하였다. 여기서 하산하면 칼바위를 지나 정릉으로 하산하게 된다.
대성문 / 보현봉 동북쪽으로 이어지는 산성 능선 해발 625m 지점에 위치한 성문
/ 으로 북한산성 성문 가운데서 가장 큰 문이다. 원래 처음에는 소동문으로
/ 불리우는 작은 암문이었으나, 성문 위치가 북쪽 기슭 행궁이 있는 곳에서
/ 이곳을 통과하여 형제봉과 보토현을 경유하여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편리
/ 한 코스에 위치하고 있어서 임금이 이문을 출입하게 됨으로써 뒤에 성문
/ 을 더욱 성대하게 개축하여 임금이 출입하는 성문으로 위용을 갖추고
/ 이름도 대성문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대남문 /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 중 남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 처음 축조 당시는 문수봉암문으로 불리웠던 성문으로 해발 715m의 보현
/ 봉과 해발 727m의 문수봉이라는 두 거봉을 잇는 해발 663m 능선 한가
/ 운데 안부에 위치하고 있다. 문수사에 들릴 수 있고, 구기동 하산코스
/ 이다. 문수사에서 바라보는 보현봉의 능선이 아름답다.
청수동암문 / 문수봉과 나한봉 사이 해발 694m에 위치한 성문으로 산성주능선과
/ 의상능선과 비봉능선으로 향하는 갈림길에 위치하고 있다. 의상능선의
/ 끝이며, 대남문으로 이어지고, 문수봉의 우회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 암벽과 바위사이 길로 내려가야 하므로 힘든 길이된다.
북한산 통천문 / 북한산의 유일한 바위문을 통과해야 하는 곳으로 암벽길을 올라
/ 가고, 또 내려가야 한다.
승가봉 / 승가사 위쪽에 있는 봉우리여서 승가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암봉이다.
/ 승가봉에도 암벽길이 사나워 로프줄이 늘어져 있다.
사모바위/ 사모바위의 전설은 조선조 인조 임금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자가 전
/ 쟁터로 끌러갔다가 다행히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오니 사랑하는 부인이 청
/ 나라로 끌려가 남자는 사랑하는 부인이 풀려나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고 한
/ 다. 전쟁이 끝나고 여인들은 청나라에서 풀려나 돌아왔으나, 고향으로 돌
/ 아가지 못하고 북한산 자락 지금의 홍은동에 모여 살고 있었는데, 남자는
/ 부인을 찾으려고 그 지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지 못하고 결국 그는 북한
/ 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며 언제고 돌아올 부인을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
/ 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북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바위모습을
/ 사모바위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승가사 / 승가사는 종로구 구기동 산 1번지 북한산 비봉 중턱에 자리한 대한불교
/ 조계종 직할교구 조계사의 말사이다. 북한산은 그 수려한 자태가 어느 곳
/ 하나 손색이 없지만 승가사로 오르는 계곡의 경치는 특히 빼어나서 예로
/ 부터 북한산의 여러 계곡 가운데 으뜸으로 꼽혀혔다. 승가사에는 창건 이
/ 후 여러 차례 왕들이 행차하여 기도드렸고, 그 외에도 조선 초기의 고승
/ 함허(涵虛 스님과 조선 후기의 팔도도승통(八道都僧統)이던 성월(城月)
/ 스님 등도 모두 이곳에서 수행하였다. 조선시대 불암산의 불암사와 북한
/ 산의 승가사와 진관사, 그리고 삼성산의 삼막사가 4대사찰에 속하였다.
/ 승가사 뒤쪽 높은 곳에 마애석가여래좌상이 있다. 승가사에 들어서면
/ 삼각산승가사사적비(三角山僧伽寺事蹟碑)가 방문객을 맞는다. 그 뒤에는
/ 팔각형 9층석탑이 우람하게 서있다. 그리고 대웅전 등의 부속건물들이
/ 경사가 급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승가사 능선을 등산하면서도
/ 승가사에 들릴 기회가 없었다. 오늘은 당랑 혼자서 산행을 하므로 우이동
/ 에서 시작한 산행을 무리 하면서 욕심을 부려 승가사까지 산행을 하였다.
마애석가여래좌상 / 대웅전 뒤로 올라가면 30개의 돌계단을 오르면 연화교와 쌍룡
/ 교를 지나 다시 108개의 잘 다듬어 놓은 108개의 돌 계단을 올라가면 큰
/ 암벽에 약5m의 높이의 ‘마애석가여래좌상(보물215호)’은 연화대좌 위에
/ 결가부좌한 좌상으로 머리위에는 팔각형의 보개가 얹혀있다. 두 손은 양
/ 쪽 팔을 약간 옆으로 벌리고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은 석가모니가
/ 보리수(菩提樹) 아래에 앉아서 성도(成道)할 때 악귀의 유혹을 물리친
/ 증인으로 지신(地神)을 불러 자신의 깨달음을 증명했다고 하는 내용에서
/ 유래된 것으로 주로 석가 불(釋迦佛)이 취하며 결가부좌는 불좌상에서 만
/ 볼 수 있다.
하산 / 구기동으로 하였음. 전 구기매표소 자리에 도착하니 시계는 5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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