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이야기

커피 이야기 3

paxlee 2005. 3. 11. 21:59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1.  커피 애호가들

서양에서는 옛부터 커피가 위대한 인물들에게 각별히 사랑 받아 왔다. 프러시아를 대국으로 끌어올린 프리드리히 대왕은 서민들에게 커피를 금지하면서도 커피를 마셨고, 바하는 '커피 칸타타' 를 작곡했으며 철학자 칸트는 말년에 커피에 푹 빠졌다.

 

그리고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커피가 없으면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며 베토벤의 경우 아침식사는 커피 뿐이었다.  식사.커피.집필. 도중에 또 커피… 프랑스의 유명한 문호 발자크는 이 생활을 20년 동안 계속해 74편의 장편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단편을 썼다.

 

프랑스의 작가 타레랑은 커피에 관해서 '악마와 같이 검고, 지옥같이 뜨겁고, 천사와 같이 순수하고, 키스처럼 달콤하다' 고 노래했는데 이외에도 문학에 등장하는 커피는 수없이 많다. 

                                    

2.  커피- 그 명암

인류가 한 해 마시는 커피는 4천억 잔이 넘는다고 한다. 석유 다음으로 유통량이 많다고 한다. 따라서 커피의 유통 가공업체들은 사상 최고의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반면 커피생산자들은 자녀들을 학교와 병원에도 보내지 못할 만큼의 절대빈곤에 시달린다고 한다. 거대 자본들이 초원과 숲을 밀어내고 만든 ‘녹색사막’ 에 기계를 들이고 약을 쳐서 커피의 생산량을 늘림으로써 공급과잉으로 인한 커피콩 가격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3.  커피-유럽문명과 아랍문명의 징검다리

기독교 문화가 뿌리를 내린 곳 어디서나 포도농장을 볼 수 있듯 이슬람 문화가 지배적이던 곳 어디서나 커피향을 맡을 수 있었다. 흔히 우리는 커피의 원산지를 남미의 어디쯤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아랍이다. 알라의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정신이 아득해지는 졸음의 고통을 이기려 애 쓸때 천사 가브리엘이 전해준 바로 그 음료가 커피였기에 이슬람에서는 커피가 종교였다.


와인을 즐기는 기독교인들이 정직하고 정열적인 반면 커피를 즐기는 이슬람인들은 침착하고 냉철하며 사색적이었는데, 이런 정신적 패턴은 문명도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4.  커피 한잔을 마시고 바스티유를 향하여

살롱의 기원은 고대 아테네와 로마로 거슬러 올라간단다. 기원전 4~5세기 경 아테네에서 젊은 귀족들이 스포츠클럽과 더불어 살롱에서 향연(symposium)을 즐겼는데, 이곳에서 특정한 주제를 내걸고 담론과 사교를 즐기는 모습이 17~18세기 프랑스의 살롱 풍속도와 흡사하다.

 

사교인의 모태가 된 살롱은 17세기의 대표적 교양인들의 지적, 사교적인 연금장이었다. 신과 형이상학의 문제에서 여인의 패션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사회에 대한 무궁무진한 관심이 화제에 올랐고, 그 화제가 바로 그대로 저술의 주제가 되었다. 또한 커피는 사람들이 모여 대화와 논쟁을 하는 커피하우스의 출현을 가져왔고, 이 커피하우스는 정치발전의 모태가 되었다. 결국 프랑스 혁명의 출발점이 된다.

 

1789년7월12일 프랑스 혁명가 카미유 데물랭이 파리의 팔레로열에 있는 카페포이의 옥외 테이블에 올라가 군중들을 바스티유로 향하도록 선동했다.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프랑스 혁명의 진원지였던 유럽의 살롱문화가 점차 카페에 자리를 넘겨 주게 된다. 그건 무역상들이 들여온 아랍에서 발견된 ‘검은열매’, 즉 커피가 유럽인들을 열광시켰던 것이다

 

5.   나폴레옹의 해상봉쇄

지금 브라질이 최대 커피 생산국이 된 것은 나폴레옹이 영국의 해상무역을 차단하기 위한 대륙봉쇄의 결과이다. 대륙봉쇄로 커피를 마실 수 없게 된 유럽과 아메리카는 새로운 커피 전진기지로 브라질을 선택했던 것이다.

6.   커피한잔이 남북전쟁의 승패를 가르며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제 2부

에는. "다른 이유야 어쨌든 설탕과 진한 크림이 들어간 진짜 커피를 마실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는 북군을 증오했다." 라고 씌어있다.

남북전쟁에서는 남군도 북군도 식량이 모자라 병사들은 마른 빵을 커피에 적셔 먹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커피의 존재는 매우 귀중했다. 야전에서는 더했다. 커피의 부족은 남부에서 특히 심해 민들레랑 치커리의 뿌리까지 마셨다. 남북전쟁이 끝난 후에도 커피가 귀하여 사람들은 늘 '진짜 커피가 먹고 싶다'고 버릇처럼 말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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