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 아름다움의 과학 *-

paxlee 2008. 5. 4. 10:02

 

                      아름다움의 과학

 

어떤 책은 우연처럼, 또 어떤 책은 운명처럼 만나게 된다. 그렇게 읽게 된 책들을 나는 개인적으로 친절한 책, 순진한 책, 도발적인 책, 논쟁적인 책, 까다로운 책, 무뚝뚝한 책, 흥미로운 책, 이런 방식으로 분류하곤 한다. '미인 불패, 새로운 권력의 발견'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아름다움의 과학'이라는 책은 까다롭고 도발적이며 논쟁적인 책이다. 이 책은 우리가 익히 그렇게 믿고 있듯이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의 것이며, 외모보다는 성격이 더 중요하고, 제 눈의 안경이라는 통념이 모두 허상이라는 뼈아픈 진실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 소설가 조경란

 

그러나 또한 이 책은 친절하고 다정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미(美), 즉 '아름다움'을 다루고 있는 데, 어떻게 무뚝뚝할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아름다움'과 '과학'이라는 단어는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과학이나 수학의 세계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를테면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침묵의 영역'처럼 수학용어로도 공식화할 수 없고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영역 같은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 울리히 렌츠는 그 설명하기 힘든 '아름다움'이라는 영역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왜 아름다움은 우리 사회에서 이토록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걸까? 오늘날 아름다움은 왜 그렇게 예찬되는 것일까?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웠던 시대가 있기는 했던 걸까? 그의 질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아름다움, 이 주제를 학문적으로, 보다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는 없을까?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실험과 통계다. 첫 번째 심리학 실험이 시작된 장소는 디트로이트 공항. 한 남자가 공중전화 박스 문을 열자 곧바로 서류철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대학에 지원하는 어느 고등학교 졸업생의 신청서류철이다.

 

겉에는 이런 메모가 붙어 있다. '사랑하는 아빠, 좋은 여행이 되길 빌어요. 그리고 비행기 타기 전에 이 신청서 부치는 거 잊지 마세요. 사랑하는 딸 린다가.' 남자는 이력서에 붙어 있는 사진을 들여다본다. 그날 디트로이트 공항에 있던 502명의 승객들은 오직 사진만 다른, 똑같은 이름, 똑같은 내용의 서류철을 보았다. 서류를 부탁한 여학생의 외모와 서류가 돌아오는 것 사이에는 과연 상관관계가 있을까? '실험 사회심리학 저널'에 공개된 결과는 '사진 속의 얼굴이 예쁠수록 도와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커진다'였다. 

 

 독일 의사가 쓴 이 책은 출간 당시 전 독일을 뜨거운 논쟁 속으로 몰아넣었다고 한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이유는 아름다운 외모야말로 우리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덕목이라는 '과학적' 고백과 아름다움이란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다른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그저 슬쩍 한번 보기만 해도 파악할 수 있는 키나 몸무게, 혹은 머리색처럼 정량화 할 수 있는 '객관적'인 개념일 수 있다는 주장 때문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아름다움의 마법을 알아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과연 아름다움이 힘을 잃게 될지는 역시 의문이다.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아직 사회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아기들마저도 예쁜 얼굴을 더 오래, 더 유심히 쳐다본다는 사실처럼 아름다움이란 본능적으로 눈을 충족시키며,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웠던 시대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우리가 저절로 알게 되듯 아름다움은 타인을 끌어당기고 가까워지게 하고 친밀하게 만든다. 그래서 매력적인 여성은 접촉사고를 내고도 그렇지 못한 여성보다 욕을 덜 먹고 잘생긴 종업원은 그렇지 않은 종업원에 비해 팁을 더 많이 받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아름다움의 재능이며 권력이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외적인 아름다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대개의 다른 순진한 책과 달리 이 책은 저자의 의학지식에 문화사적, 진화생물학적, 언어학적 그리고 뇌과학적 연구 성과가 더해져 육체적인 아름다움이 새로운 권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역시 논쟁적인 주제며 또한 저자는 우리에게 이런 까다로운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아름다움을 향한 광기가 왜 나쁜 것인가? 하는. '아름다움의 신화'를 쓴 미국 작가 나오미 울프는 '이제까지 여성들이 얻어낸 것, 아이·부엌·여성적인 것에 대한 집착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자 아름다움의 신화가 그들을 구속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전 세계의 여성을 아름다움에 집착하게 하는 이들은 대체 누구일까. 얼마 전에 영화배우 전지현이 주근깨가 고스란히 보이는 맨 얼굴로 인터뷰한 사진이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완벽한 메이크업을 했을 때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녀의 표정은 마치 나는 완벽해 보이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보이고 싶어요, 라는 듯 느껴졌다. 40세의 사람이 40세처럼 보이는 것이 실패자처럼 보이는, 전 계층이 아름다움에 집착하고 추구하는 미적 광기 속에서 그녀의 주근깨투성이 얼굴은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경우엔 행복이 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아름다움은 확실히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책에 따르면 자신 스스로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경우에만 그렇다고 한다. 외모에만 집중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에게 부족한 것만 보게 된다. 설문조사에서도 빼어난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들 대다수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자신은 덜 아름답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미의 정도도 자신감도 달라지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좋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저자의 말처럼, 명백히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전투에 자진해서 나와 있는 것 같은 강박관념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내가 '아름다운 어떤 것'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언젠가는 다 사라지고 말 거라는 사실 때문이다. 모든 쾌락이 영원하다면 쾌락이 없는 것과 다르지 않듯 아름다움이 영원하다면 그건 이 세상에 아름다움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까. 더 아름다워지고 날씬해지고 젊어지려는 욕망은 끝이 없다. 그러나 아름다움도 사랑도, 청춘도 젊음도 언젠가는 끝난다.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아름다움 그 자체를 알고 느끼고 즐기는 것. 그것이 바로 칸트가 말한 '지식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인간이 불행한 건 본능적으로 자신을 남과 비교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지 이미 아는 사람, 당신은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

 

 - [글 / 소설가 조경란] -

 - 저자 /울리히 렌츠 지음|박승재 옮김|프로네시스|392쪽|1만5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