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의 삶의글

-* 나무와 바위 이야기 [3] *-

paxlee 2010. 9. 24. 07:36

 

                                       나무와 바위 이야기 [3]

 

나무와 바위는 산에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라 하였다. 나무가 산의 몸이고 몸에 걸친 옷이라면, 바위는 산을 대표하는  얼굴이다. 그래서 바위는 윗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나무는 산의 능선이나, 골짜기에 자리를 잡고있다. 나무는 산의 옷이므로 사계절 옷을 갈아 입고 그때 그때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나무는 살아있어 활동적이지만, 바위는 죽어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산에 나무와 바위가 없다면 산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산에는 수 많은 수종의 나무들이 한데 어울려 있지만, 산마다 또 다른 수종을 자랑하는 산들이 많다. 소백산이나, 태백산은 주목의 굴락지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은 소나무(pine)가 대표적이다. 소나무는 금강송이 최고이며, 재래종 소나무가 대부분이며, 그리고 잣나무가 소나무과이며, 수입종인 리키다소나무가 있다. 금강송은 우리나라 5대궁궐의 재목과 중요문화재의 건축자재로 사용되고 있다. 금강송 군락지는 울진 소광리를 꼽는다. 그 외에 삼척 준경묘 주변과 봉화 석포면 석개재등이 유명하다.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은 참나무(오크(oak)이다. 참나무 종류는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 등 6가지 종이 있다. 참나무의 열매 도토리는 도토리 묵으로 유명하며, 야생동물의 겨우살이 먹이로 으뜸이다. 굴참나무 겁데기는 코르크마개로 사용하며, 참나무는 포도주의 숙성을 위해 오크통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참나무 숯은 참숯으로 제일좋다. 소나무와  참나무는 우리 산의 산림자원으로도 유용한 나무들이다.

 

바위는 산의 얼굴이라 하였는데, 북한산국립공원의 삼각산의 정상을 이루는 백운봉과 인수봉, 만경봉은 삼각의 뿔 모양을 하고 있어 삼각산이라 하였다고 전하며, 그 정상은 거대한 암벽으로 형성되어 있다. 도봉산 또한 그 정상 자운봉과 만장봉, 선인봉의 정상은 연봉으로 이루어진 장엄하고 수려한 암벽을 이루고 있다. 바위의 개념은 보통크기를 우리는 돌이라 하고, 돌보다 작고 흙보다 큰 것을 모래라 부르고, 돌보다 큰 것은 모두 바위라 한다.

 

백운봉이나, 인수봉처럼 거대하고 장엄한 바위를 우리는 암벽이라 부른다. 암벽은 산의 정상을 형상하고 있어 산의 얼굴이라 한다. 사람의 얼굴이 사람마다 다 다르듯이 산의 얼굴도 산마다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서울의 산은 대부분 암산이다. 수락산이 그렇고, 불암산도 암산이다. 그리고 관악산까지 암산이다. 그러나 청계산을 우리는 육산이라 부른다. 청계산도 정상부위에는 암벽이 있지만, 다른 산들처럼 거대한 암벽이 아니다. 대부분 부드러운 흙의 산이라 육산이라 부른다.

 

나무와 바위는 천년 만년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는 산의 몸과 얼굴이라고 하였다. 나무와 바위는 스스로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옮겨 갈수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그 운명도 문명의 변화하는 바람을 타고 세월의 소용돌이 속에 인간의 힘에 의해 자리를 옮겨 갈수 밖에 없는 운명을 안고 있다. 인간과 자연이 서로를 탓하지 않고 존중하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연의 질서를 확보해야 하는데, 그 질서, 자연의 질서, 법의 질서가 지키지지 않듯이 나무와 바위의 자리가 위태롭게 변해가고 있다.

 

도시의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산의 몸통인 소나무와 바위는 도시로 도시로 옮겨가고 있다. 새로 건축하는 아파트의 조경은 대부분 소나무가 몇 백 그루씩 옮겨와 아파트의 아름다운 조경을 형성하는데, 없어서는 않되는 나무로 각인이 되어 있다. 옛날에는 소나무는 옮겨심으면 죽는다는 정평이 나서 옮겨 심으려는 욕심이 없었는데, 요즈음은 조경인들의 노하우가 발달하여 옮겨심어도 90% 이상은 그 심산의 환경에서 도시의 각박한 환경에 이식되어도 잘 살아가고 있다.

 

바위 또한 조경에 빼 놓을 수 없는 재료로 으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산의 아름다운 자연, 나무와 바위를 인간들의 욕심이 발동을 하여 산을 이루고 형성해 가는 소나무와 바위를 캐어내고 허물어 내어 산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망가뜨려 가면서 인간들의 욕심을 채우는 현실을 볼때, 입으로는 자연보호, 법 질서유지등을 외치면서도 손으로는 그것을 스스로 무시하고 나무와 바위를 캐어내어 주머니를 채우는 오늘의 현실을 원망해 본다. 

 

나무와 바위 그리고 산과 인간, 여기에는 어떤 함수관계가 있기에 법과 돈의 함수관계까지 겹쳐서 자연이 자연의 자리를 잃어가는가. 나무와 바위, 그리고 산은 자연 그대로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한강이 한강의 그 범위 안에서 한강 물이 흘러 가듯이 말이다. 한강의 물도 한강의 그 범위를 벗어나면 인간에게 재앙을 가져다 준다. 그래서 자연이나 인간이나, 자기의 자리를 굳게 지키고 방어해야 한다. 인간과 자연이 자연스럽게 마주보고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삶은 건강하고 평화스러워 진다. 
 

- 나 무  -                 이형기

 

나무는
실로 운명처럼
조용하고 슬픈 자세를 가졌다.
 
홀로 내려가는 언덕길
그 아랫마을에 등불이 켜이듯
 
그런 자세로
평생을 산다.
 
철따라 바람이 불고 가는
소란한 마을길 위에
 
스스로 펴는
그 폭넓은 그늘…….
 
나무는
제자리에 선 채로 흘러가는
천 년의 강물이다. 

 

 - 바     위  -             유  치  환

 

내 죽으면 한개의 바위가 되리라

아예 愛憐(애린)에 물들지 않고

喜怒(희노)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깍이는 대로

億年(억년) 非情(비정)의 緘默(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 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먼 遠雷(원뢰),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