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백의 고장 상주

-* [상주 MRF이야기길 | 제4코스] 낙동강 숨소리길 *-

paxlee 2011. 1. 20. 10:10

 

                    [상주 MRF이야기길 | 제4코스] 낙동강 숨소리길

나각산(螺角山·240m)은 경북 상주시 낙동면 낙동리에 위치한 자그마한 봉우리다. 이곳은 500km가 넘는 낙동강의 긴 줄기와 맞닿은 곳 가운데 유일하게 ‘낙동’이라는 이름을 지닌 면(面) 지역이다. 게다가 나각산이 있는 동네의 이름까지 낙동리다. 예로부터 낙동나루라 불리던 곳으로 조선시대 원산, 강경, 포항과 함께 우리나라 4대 수산물 집산지로 꼽혔다. 낙동강 유역에서 최대의 상권이 형성되었던 장소다.


교통이 발달하기 전까지만 해도 강은 중요한 수상교통의 통로였다. 김해에서 거슬러 올라온 소금배와 상선들이 꼬리를 이었고, 주변의 객줏집과 주막에는 외지 선원들과 상인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강 건너 관수루는 낙동강 3대 누각의 하나로 많은 시인 묵객들이 머물던 장소다. 이곳에 낙동강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있는 명품길이 자리하고 있다. 일명 MRF 낙동강 나각산 숨소리길이다.


▲ 나각산 전망데크에서 본 낙동강. 큰 물굽이를 그리며 돌아나가는 강줄기가 시원스럽다.

나각산은 낙동에서 보면 소라의 모습과 닮았다. 산은 낮지만 산릉에 오르면 높이가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정상에 서면 낙동강과 그 주변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을 정도로 조망이 뛰어나다. 낙동강 최고의 전망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주변 풍광도 빼어나다.


들머리인 낙동강한우촌에서 도로를 건너 강둑의 길을 따라 가면 낙단보 공사현장 바로 옆에 갈림길이 있다. 이정표를 따라 들길로 접어들면 복숭아, 고추, 땅콩, 호박, 벼 등 농작물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나도 모르게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 길을 벗어나면 도수로가 나오면서 산길이 나타난다. 동네 뒷산을 산책한다고 표현할 정도로 완만한 길이다. 산길은 소나무가 무성한 야트막한 능선을 타고 이어진다.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진 숲속은 경사가 완만해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코스다. 잠시 뒤 산길 오른쪽에 잘 지은 간이화장실 하나가 나타난다. 그 앞에 사유지를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고, 바로 뒤로 낙단보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보인다. 마을로 내려서는 길이다. 이곳을 지나쳐 계속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숲 속의 길을 10분 정도 따르면 ‘옛길 갈림길’이라고 쓴 이정표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내려서는 옛길은 정비되지 않아 희미하다. 주변에 최근 일어난 산불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 전망대까지는 600m 거리. 하지만 잠시 뒤 쉬어가기 좋은 정자가 나타난다. 정자를 지나면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능선 위에 조성한 체육시설이 모습을 드러낸다. 간혹 이곳에서 운동하는 주민들을 만날 수 있다.


▲ 나각산 정상에서 본 구름다리와 팔각정. 상주의 새로운 명물로 인기를 끌 것이다.

운동기구를 지나면 전망대를 오르는 긴 계단이 나타난다. 목재로 만든 계단 길의 길이는 약 200m. 자연 경관의 훼손을 최소화한 설계가 돋보인다. 소나무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면 낙동강이 발아래 펼쳐지는 커다란 목조데크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보는 낙동강의 전망이 환상적이다.


두 번째 전망데크를 지나면 2층 팔각정 전망대를 만난다. 소라 모양의 나각 암반이 있는 이 곳이 나각산(240m) 정상이다. 이곳에서 보는 크게 굽이를 돌며 흐르는 낙동강의 파노라마가 장쾌하다. 비록 산의 높이는 낮으나 사방으로 막힘이 없어 상대적으로 웅장하게 느껴진다. 바위는 온통 콘크리트를 비벼 놓은 것 같다. 강돌이 바위에 듬성듬성 있어 과거 이곳이 강이 융기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 전망대를 뒤로하고 새롭게 조성한 구름다리로 이동한다. 정상부의 두 봉우리 사이에 걸쳐 있는 이 현수교에서 보는 전망은 나각산의 보물이다. 낙동강의 물굽이가 다리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광경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구름다리와 그 건너편 봉우리의 제2전망대에 오르면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전망대에서 지그재그로 내려서는 계단을 따라 내려선다. 바로 옆의 바위벽에 부처손이 가득하고 한쪽에는 개고사리가 탐스럽게 군락을 이뤘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았다는 증거다. 다행히 나무계단으로 탐방로가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어 이러한 군락지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계단을 내려선 뒤 수풀 속의 좁은 길을 통과해 구름다리 밑으로 내려서니 ‘마귀할멈굴’이 나타난다. 서너 명이 들어가 서 있을 수 있는 자그마한 바위굴이다. 굴속을 들여다보면 둥근 돌이 박혀 있던 흔적이 남아 있다.


▲ 임도를 걷다가 만나는 나각산 장승과 솟대.

마귀할멈굴 지난 직후 만나는 삼거리에는 ‘숨소리길 낙동강 0.8km 15분’이라 쓰인 이정표가 있다. 여기서 직진하면 첫 번째 팔각정 밑의 전망데크로 길이 이어진다. 왼쪽으로 방향을 꺾어 강으로 내려가려면 산 속의 소로를 타고 전진한다. 주능선에서 벗어나 하산하는 길은 원시림을 연상케 하는 숲이다.


수시로 무덤이 나타나는 산 속을 거쳐 강변으로 내려선다. 이곳에 ‘낙동강한우촌 3.3km 50분’이라 쓴 이정표가 서 있다. 남쪽으로 낙동강을 따라 이어지던 길은 잠시 뒤 서쪽의 산 속으로 파고든다. 분위기 좋은 임도를 타고 작은 고개를 넘어서면 화장실과 솟대, 장승이 세워진 곳에 닿는다.


이곳에서 숨을 돌린 뒤 다시 고개를 넘으면 조성 중인 낙동강생태체험단지가 나타난다. 생태체험단지를 빠져나오면 다시 낙동강과 만난다. 낙단보 공사 현장이 한층 가까워지고 민가와 문을 닫은 음식점들이 눈에 띈다. 강 건너 낙단교 옆으로 영남 삼대 누각 중에 하나로 꼽는 관수루가 숨어 있다. 강가 절벽에 위치해 시원한 전망이 일품이다.


계속 제방을 따라 하류로 500m쯤 진행하면 코스 초입의 ‘현위치 낙단보’ 이정표와 다시 만난다. 출발지점인 낙동강한우촌이 지척이다. 나각산 산행은 부담 없고 가벼워 남녀노소 누구나 도전해도 좋은 코스다.

 

▶낙동강 숨소리길 |  총 거리 7.7km, 2시간10분


낙동강한우촌~낙단보~등산로~나각산 정상~구름다리~전망대~마귀할멈굴~낙동강길~장승백이~낙동강한우촌 


▶찾아가는 길


중부내륙고속국도 상주 IC → 대구 방면 → 낙동(약 10분 소요). 국도를 이용할 경우 무조건 낙동면 낙동리 낙단교를 찾으면 된다.


▲ 낙동강변 바위절벽 위에 서 있는 관수루.

 

▶볼거리


주변에는 낙동강의 삼대누각의 하나인 관수루가 있고, 낙동강에는 낙단보가 조성 중이다. 숨소리길에는 전망대와 구름다리, 마귀할멈굴, 장승백이가 있고, 강가에는 옛 낙동나루터 흔적들이 남아 있다.


▶마귀할멈굴 지명 유래


봉황의 알처럼 생긴 바위 굴속에 가득해


▲ 나각산 바위절벽 하단에 형성된 마귀할멈굴.

 

어느 날 낙동에서 제일 나이 많은 할머니가 호숫가에서 소라를 줍다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가장 오래된 소라가 하는 말이 “하늘에는 신선 일곱 명이 사는데, 그 중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는 신선의 우두머리는 봉황 알을 먹어서 절대 늙지 않고 20세의 젊은 미모를 유지하면서 산다”고 했다. 그런데 봉황 알은 호숫가 어딘가에 숨겨 놓는데, 일년 이상 굴속에서 숙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신선들이 매년 칠월칠석날 별빛을 타고 내려와서 호숫가에 알을 묻어 둔다고 한다.


할머니는 칠월칠석날 밤 호숫가 바위 뒤에 숨어서 신선들이 봉황 알을 묻고 꺼내는 것을 훔쳐봤다. 할머니는 신선이 묻어둔 봉황 알을 집 부엌으로 옮겨 숨겨두고 하루 하나씩 먹기 시작했다. 젊음을 회복한 할머니를 보고 주변 사람들이 비결을 알려달라고 했으나 가르쳐주지 않았다.


일년 후 신선들은 봉황 알이 없어진 것을 보고 그것이 할머니의 소행임을 알라차렸다. 신선들은 할머니에게 마귀할멈으로 변하는 벌을 내리기로 했다. 그리고 호수와 강을 산으로 바꿔 굴을 하나 만든 다음, 그 속에 알처럼 생긴 돌을 박아 놓고 마귀할멈이 살도록 했다. 마귀할멈은 이 돌을 봉황 알로 착각하고 빼서 먹다가 이빨이 몽땅 빠졌고, 낙동나루로 내려가 몰래 소금배를 타고 떠나 버렸다.


마귀할멈이 사라진 뒤 사람들이 호기심에 굴을 찾았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기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굴에 다녀온 뒤 모두 자식을 낳게 된 것이다. 소문은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갔고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 글 김기환 차장 / 사진 염동우 기자 / 월간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