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백의 고장 상주

-* [상주 MRF 이야기길 | 제8코스] 장서방길 *-

paxlee 2011. 2. 6. 11:10

 

                 [상주 MRF 이야기길 | 제8코스] 장서방길

 

장서방길은 인심이 살아 있는 시골 마을과 산야 그리고 맑은 물이 흐르는 개천이 잘 어우러진 걷기

코스다. 이안천을 따라 길이 조성되어 있어 시원스런 물소리를 들으며 걷다가 여름철에는 냇물에 발

도 담구고 다슬기도 주워 가며 쉬엄쉬엄 걷는 길이다.

 

‘장서방’이란 마을이름은 동네 아저씨 같은 훈훈한 느낌을 주지만 실상 의미는 전혀 다르다. 동네 뒷산에 ‘긴 성’(長城)이 있다는 데에서 마을이름이 유래했다 하기도 하고, 과거에 장승이 있던 ‘장승배기’ 동네였기 때문이라 말하는 주민들도 있다. 901번 도로를 기준으로 동쪽 산기슭에 자리잡은 곳이 바깥장서방 마을, 왼쪽 골짜기 안에 들어선 곳이 안장서방 마을이다.


“이게 할매바윕니다. 할부지 소나무는 몇 해 전 사라져 버렸어요.”


▲ 이안천변의 서만새터 마을 주민과 장진희씨가 주홍빛 속살을 드러낸 감을 들여다보며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서만2리 안장서방 길목에 닿자마자 전병순(상주시청 문화관광과)씨는 할매바위부터 가리킨다. 웅덩이처럼 움푹 파인 곳에 엄지손가락처럼 톡 튀어나온 할매바위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이면 동제(洞祭)를 지내는 성스런 곳이었다.


‘서만2리(안장서방), 서만새터 2.2km(40분)’ 팻말이 서 있는 할매바위에서 장서방길은 시작된다. 수백 년 묵은 감나무가 즐비한 안장서방 마을 콘크리트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서면 서만2리 새터마을. 백두대간 형제봉에서 발원한 이안천 변의 널찍한 터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총 여덟 가구인 집집마다 주홍빛 속살을 드러낸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타래가 있어 ‘곶감의 고장’다운 모습과 겨울다운 풍경을 물씬 자아낸다. 주민들은 낯익은 상주시민뿐 아니라 낯선 취재팀도 반겨주어 시골인심을 느끼게 했다.


“한창 땐 시내에서 경운기 타고 고개를 두어 번 넘어 이안천에 와서 천렵하고 매운탕을 끓여 먹곤 했어요.” 마을 삼거리에서 MRF는 두 가닥으로 나뉜다. 왼쪽 길은 바람소리길(서만쉼터 1.2km·20분)이고, 오른쪽 아스팔트길은 장서방길(노루목 1.2km·20분, 우산교 입구 3.3km·50분, 안장서방 입구 6.3km·1시간45분)이다.

▲ 장서방길 기점인 안장서방 마을 들머리.

“좀더 긴 MRF 길을 원하면 바람소리길과 이으면 돼요. 물소리 들리죠? 그래서 물소리길이라 하려 했는데 주민들이 마을이름을 붙이는 것이 더 낫다 해서 장서방길로 지은 거예요.”


이안천은 마을 앞을 굽이쳐 흐른다. 널찍한 아스팔트길을 따라 모퉁이를 돌아서자 도로 왼쪽으로 이안천과 냇가에 치솟은 바위절벽도 눈에 들어온다. 도로를 벗어나 냇가 길로 접어들자 투명한 옥빛 냇물 속에서 노니는 물고기 여러 마리가 눈에 띄었다.


“저 바위에 써 있는 글자 한 번 읽어 보실래요? 예서체라서 쉽지 않을 거예요. 특히 왼쪽 끝글자는요.” 냇가 바위절벽에 새겨진 글씨는 ‘水回洞’. 물이 굽이돌아 가는 곳이라는 뜻이다. 전병순씨는 “여기서 ‘30리 우복동천’이 시작된다”며 “우복동천 아래 이무기바위로 가려면 노루목에서 능선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 장서방길에서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는 이안천 이무기바위(물 한가운데) 일원. 왼쪽 절벽이 천마굴 암벽, 오른쪽 바위가 봉천바위다.

노루목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 지어졌으나 도로가 가로지르며 잘려나간 노루목에서 능선으로 올라붙어 10분쯤 걸어가자 ‘水回洞’ 절벽 아래 콘크리트 보 앞으로 내려선다. 맑은 물이 흐르는 이안천 건너로는 거대한 바위절벽이 우뚝 치솟아 멋진 산수화를 그려놓고 있었다.


“맨왼쪽 절벽에 보이는 굴이 천마굴이에요. 물에 잠긴 바위가 이무기바위고요. 그 오른쪽 바위절벽은 하늘을 받치고 있는 듯해서 봉천(奉天)바위라 불리고요. 이안천 물이 좋아 여름철이면 피서객이 몰려드는 명소예요. 천렵도 하고 다슬기도 줍고요.”


풍광을 감상하며 간식을 먹은 뒤 이안천 냇가 길을 걷다가 아스팔트길을 따라 노루목교를 건너고 이어 무들교를 건너자마자 물가로 내려섰다. 좌우로는 산릉이 길게 이어지고 중간중간 농가가 들어앉아 있는 전형적인 시골 풍광이 이안천변으로 펼쳐진다. 황량한 논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 먹으려고 고개 숙이고 있던 꿩들이 사람소리에 놀라 개울 건너편으로 달아나고, 퍼드덕 소리에 놀라 짖어대는 동네 개들 소리는 산을 울렸다. 그래도 널찍한 반석을 타고 흘러내리는 계류는 모습도 곱고 물소리도 정겨웠다.


▲ 오지의 풍광을 자아내는 이안천 걷기 길.

우산교 앞에서 도로로 올라섰다 다시 개울가로 내려선다. 잡목이 제법 우거져 있고, 산길이 제대로 나 있지 않아 더욱 자연미 넘치는 개울가 길을 따라 20분 정도 걸으면 폐잠사가 나타나면서 널찍한 농로가 반겨준다. 경운기도 다니고 트럭도 다닐 만한 길이다.


이안천과 점점 멀어지면서 물소리 대신 바람소리가 귀를 울려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서와 은척을 잇는 901번 지방도로로 올라선다. 2차선 찻길을 따라 내서면 쪽으로 10분쯤 걸어가자 다시 원점, 할매바위가 “어서 오라”며 반겨준다.


▶장서방길 | 총 8.5km, 2시간25분


안장서방 입구~(0.6km·10분)~안장서방~(0.8km·15분)~서만새터~(1.2km·20분)~노루목~(2.1km·30분)~우산교~(1km·20분)~폐농가~(2km·35분)~안장서방 입구


▲ 장서방길 이안천 길을 따르다 만나는 폐잠사. 상주는 쌀, 곶감, 누에고치로 이름난 삼백의 고장이다.

 

▶찾아가는 길


상주 IC(남상주 IC) → 상주 시내 → 25번국도 타고 약 12km → 내서면사무소 직전 삼거리에서 우회전 → 901번 지방도로 → 서만2리 장서방마을


▶볼거리


수회동(水回洞)


이안천 물이 휘돌아 흘러 내려가는 곳이다. 바위에는 우복 정경세 선생이 쓴 수회동(水回洞)이라는 글이 음각되어 있고, 3개의 굴로 구성된 천마굴, 이무기바위, 삼신바위, 봉천바위 등이 있다.

 

▶할매바위와 할부지소나무


주민들이 섬기는 신석과 신목


장서방길 출발점에는 음력 정월 보름 동제를 지내는 할매바위와 할부지소나무가 있다. 할매바위는 도로를 확장하면서 다른 곳으로 옮겨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간곡한 건의에 따라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반면에 그 위쪽 솔숲에 있었던 할부지소나무는 솔잎혹파리의 피해로 없어지고, 지금은 그 자리에 아들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왜 할매바위와 할부지소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을까. 옛날 장서방마을에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욕심이 많았지만 할머니는 천성이 매우 착해 동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어느 날 노부부가 논에서 일하고 있는데 지나가는 나그네가 “그렇게 논에서 일할 필요 없이 평생 모습도 변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대신 부부가 똑같이 이유를 달지 않고 승낙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 안장서방 마을 들머리에 위치한 할매바위.

 

나그네가 가고 난 다음 할아버지는 무조건 승낙하라며 들들 볶아댔으나 할머니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할머니도 더 이상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승낙을 하게 되었다.


3일째 되는 날, 나그네는 멋지게 생긴 소나무와 못생긴 바위를 가지고 와서 노부부에게 각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 했다. 할아버지가 욕심이 난 나머지 먼저 키가 크고 멋진 소나무를 선택하자 갑자기 맑은 하늘이 캄캄해지고 뇌성벽력을 치면서 할아버지는 소나무로, 할머니는 바위로 변해 버렸다. 이후 동네 사람들은 할머니의 고고한 마음씨를 위로하기 위해 매년 정월 보름 할매바위에서 동제를 지내고, 덤으로 할부지소나무에도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수회동


물돌이 부근에서 마을을 지키는 삼신바위


이안천에도 물이 돌아 내려가는 두 곳이 있다. 수회동과 염소목이다. 그중 내서면 서만리와 외서면 우산리 경계에 있는 수회동은 산과 계곡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조선 중기 학자인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 선생이 이곳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냇가 바위에 ‘水回洞’이라는 글을 새기기도 했다. 


이곳에도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온다.


옛날 수회동에 한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뱀 한 마리가 아침마다 우물가에 나와 할머니한테 꼬리를 흔들면서 문안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는 뱀이 보이지 않으면 걱정할 정도로 가까워졌고, 어떤 때는 뱀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


할머니는 매일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면 앞산의 하늘굴에 올라가 기도를 드렸다. 이 사실을 안 뱀이 하루는 할머니 뒤를 밟았다. 할머니가 기도를 시작하자 굴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냇가의 물줄기를 산 쪽으로 굽이 돌아가도록 물길을 돌리라. 작업은 반드시 유월 초하룻날 밤에 하라. 그렇게 하면 말은 천마가 되고, 너는 불로장생할 것이다.”


엿듣고 있던 뱀은 ‘내가 먼저 물줄기를 바꾸면 나도 용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해 말 뱀은 할머니가 쌍둥이 망아지를 돌보느라 지쳐 잠든 모습을 확인하고 물길을 돌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냇물로 인해 끊어진 산줄기가 연결되자 물은 삽시간에 굉음을 내면서 산을 휘감아 돌아가면서 잠자고 있던 할머니와 말들은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게 되었고, 뱀은 허물을 벗어 용이 되려 했다.


하늘에서 보니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하여 용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급하게 바위 하나를 내려보내 하늘 길을 막아 버렸다. 뱀은 바위에 부딪쳐 그만 물속으로 곤두박질쳐 몸이 둘둘 말리면서 떠내려가다가 용이 되지 못하고 냇가 중간에서 이무기바위가 되었고, 하늘에서 내려온 바위는 냇가의 이무기바위가 더 이상 나쁜 짓을 못하게 감시하도록 능선 상에 터를 잡아 봉천바위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한편 할머니는 물에 떠내려가다가 이무기바위 위쪽에서 삼신바위로 변했고, 말들은 앞산으로 혼비백산 달아나다가 세 개의 굴속으로 각각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부터 소원을 이루지 못한 말들을 위로하기 위해 ‘천마굴’이라 일컫게 되었다. 냇가 옆 삼신바위에 소원을 빌면 아들을 낳는다는 소문이 퍼져 지금도 기도를 드리려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  글 한필석 부장 / 사진 허재성 기자 / 월간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