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아마추어의 에베레스트 등정 비결] *-

paxlee 2011. 7. 13. 22:08

 

                      [아마추어의 에베레스트 등정 비결]

 

에베레스트 원정 결심 후 단 두 달 만에 등정 성공한 허재석씨,

 “체력 단련+용의주도한 고소 적응이 비결”
아마추어 등반가 10명 등정 이끈 김재수씨 경험담

국내 에베레스트 최다 등정자(4회)인 허영호, 3회 등정자인 엄홍길·박영석 등 소위 에베레스트 전문 산악인들은 “누구나 에베레스트 등정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물론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강조하는 에베레스트 등반에 앞서 선행돼야 할 사항, 또 꼭 챙겨야 할 장비, 그리고 등반 중 지켜야 할 사항은 무엇일까.


1977년 가을 대한산악연맹 원정대의 첫 등정 이후 에베레스트를 등반한 한국 등반대는 73개 팀으로 그중 119명(2회 이상 등정자 중복 합산)이 정상에 서는 데 성공했다. 119명의 등정자 가운데 대표적인 아마추어는 지난해 봄 아버지인 허영호(57) 대장과 함께 정상에 오른 허재석(27·서울시립대 4년)씨다.


▲ 북한산 인수봉 설교벽에서 이를 악물고 주마를 잡아 당기는 에베레스트 실버원정대 훈련 대원들.

허재석씨는 원정을 불과 두어 달 남겨놓은 시점에서 동행을 결심했다. 2007년 1월 4일 오래도록 지병으로 고생해 온 어머니가 돌아가자 아버지가 산에 관한 한 백전노장이긴 하지만 제천팀을 이끌고 에베레스트에 가는 게 왠지 불안스러워 동행을 결심했다. 평소 등산을 좋아해 친구와 한 달에 두어 번 산을 다니긴 했지만 뒷동산 수준이었고, 해외 고산 등반경험은 여섯 살 때인 1989년 아버지의 로체 등반 때 베이스캠프(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와 동일 장소)에 머물렀던 적이 있고, 11세 때 킬리만자로(5,895m), 15세 때 엘부르즈(5,642m) 그리고 20세 때 몽블랑(4,807m) 가족등반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전문등반을 해본 적은 전혀 없었다.


허영호 대장은 원정을 결심한 아들 재석씨에게 무엇보다 체력 단련을 강조했다. 재석씨는 워낙 달리기를 좋아해 1주일에 두세 차례씩 7km 달리기를 해왔다. 횟수를 이틀에 한 번씩, 거리를 10km로 늘렸다. 등반기술도 익혔다. 허영호 대장이 이끄는 제천원정대 대원들과 함께 설악산 소토왕빙폭에서 빙벽훈련을 하는가 하면 죽음의 계곡에서 설상보행법과 등강기 훈련, 활락정지법 등에 대해 훈련을 했다. 아이스폴의 크레바스에 걸려 있다는 사다리를 건너는 연습은 땅바닥에 사다리를 내려놓고 삼중화에 아이젠을 찬 상태에서 걷는 식으로 훈련했다.


캐러밴부터 C3까지 천천히 이동하며 고소적응 


제천팀은 3월 27일 출국해 루클라(2,700m)부터 베이스캠프(5,400m)를 향해 8일간의 캐러밴에 들어갔다. 셋쨋날 남체바자르(3,400m)에서 하루 쉰 것을 제외하고는 매일 걸었다. 일반적인 트레커들과 비슷한 스케줄이었다. 허영호 대장은 뜻밖에 느릿느릿 걸었다. 재석씨 판단에 저런 속도로 세계 최고봉 정상을 올라갈 수 있을까 싶었다.


마지막 로지인 고락셉(5,150m)에 하루 머물며 에베레스트 전망대인 칼라파타르(5,545m)를 아침저녁 두 차례 오른 다음 이튿날 베이스캠프(BC)로 진입했다. 그날부터 그야말로 ‘선수’인 아버지 허영호 대장과 아마추어인 아들 대원인 재석씨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랐다. 허영호씨는 속도도 빨라졌고, 한 걸음 한 걸음에 자신이 넘쳤다.

허영호 대장은 오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고소적응 프로그램에 철저히 맞춰 원정대를 운영했다. 운행을 시작하면 높이 올라가더라도 그 날로 아침에 출발한 캠프로 내려와 쉬는 게 고소적응에 유리하다는 자신의 경험에 준한 운행 스케줄이었다.


BC를 출발하는 시각은 자정과 새벽 1시 사이. 붕괴 위험이 높은 아이스폴 구간을 해 뜨기 전에 돌파하기 위해서였다. C1을 처음 오를 때에는 캠프가 바라보이는 아이스폴 언덕에서 BC로 돌아오고, 두 번째 C1 진입 때에도 C1에서 아침을 먹은 다음 다시 BC로 내려왔다. C2는 세 번째로 C1에 올라가 하룻밤 자고 일어난 다음날 올랐다. 그 날도 C1으로 내려와 자고 이튿날 다시 C2에 올라가 하룻밤 지낸 뒤 다음날 일찍 BC로 내려왔다. 허재석씨가 봤을 때 상업등반대와 비슷한 스케줄이었다.


C2를 세 번째로 오를 때에는 BC 출발 당일 하루 만에 올랐다. 그리곤 이튿날 날씨가 나빠 C2에서 하루 더 지낸 다음 C3에 올라가 점심을 먹은 다음 C2로 내려와 하루 더 자고 이튿날 BC로 내려왔다. 여기까지가 정상공격에 앞선 고소적응 등반의 모든 스케줄이었다. 이후 BC에 비해 고도가 1,200m 낮은 페리체(4,200m)로 내려와 2박3일간 쉬면서 체력을 회복한 다음 하루 만에 BC로 돌아왔다.


정상 등정 시도 때에는 BC에서 C2를 하루에 올랐다. C2에서는 하루만 쉴 계획이었으나 화이트아웃이 심해 이틀간 쉬고 C3로 올랐다. 5월 14일 C3에 올랐을 때 허재석씨는 머리는 아프지 않지만 숨 쉬는 게 불편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산소는 다른 대원들의 경우 C4 이후 사용하기로 돼 있었지만 허재석씨는 C4를 향해 오르다 중간지점부터 사용했다. 무난히 오르던 리듬은 옐로밴드(약 7,700m)를 지나 제네바스퍼(약 7,850m)를 향해 설사면을 트래버스하는 구간에서 고정로프에 매달린 채 숨진 외국 산악인의 시신을 보는 순간 깨졌다. 재석씨는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정신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정상 공격은 정상부에 몰아치는 제트기류 때문에 하루 늦어진 16일 오후 8시에 이루어졌다. 초등반대 이후 한동안 C5로 이용하던 ‘발코니’라 불리는 8,400m 고도까지는 빠른 속도로 올랐다. 산소통을 바꿔 끼워야 할 여기서부터 문제였다. 교체 산소통을 짊어진 셰르파가 올라오기를 2시간이나 기다려야 했고, 그 사이 한 팀 한 팀 제천팀을 추월하면서 점점 뒤로 처졌다. 게다가 평소 추위에 약한 허재석씨는 발가락이 시리다 못해 동상 기미가 느껴졌다.

 

▲ 한라산 장구목 일원의 설사면에서 트래버스 훈련중인 2007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

 

허영호 대장과 함께 앞서 오르는 외국 산악인들을 추월해 가며 남봉 정상에 올라섰을 때는 거의 좌절할 정도였다. 정상이다 싶어 있는 힘을 다해 오른 곳이 남봉이었고, 그 뒤로 또 다른 산이 하나 더 솟구쳐 있었다. 양쪽으로 표고 2,500m 높이의 벼랑을 이룬 나이프리지로 내려섰다가 눈이 뒤섞인 수직암벽 구간인 힐러리스텝을 올라야 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올라가면 다시는 내려올 수 없을 것처럼 위험하게 느껴졌다.


허재석씨는 지금 스스로 생각해 보면 정말 허겁지겁 올랐다 싶을 만큼 정신없이 힐러리스텝을 올라섰고, 정상이 빤히 보이는 설릉에서도 정상에 올라서기까지 30분 넘게 걸렸다고 한다. 뒤따르던 미국 여성 산악인이 힐러리스텝에서 추락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셰르파의 얘기를 듣고 알았다.


이렇게 C4를 출발한 지 12시간 만에 허영호 대장과 정상에 올라섰을 때는 하늘이 너무도 맑았다. 한 5분간 산소마스크를 벗고 허 대장과 얘기를 나누는 사이 하늘이 노래졌다. 급히 산소마스크를 쓰고도 30분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후 세상을 떠난 모친과 20여 년 전 베이스캠프에서 찍은 사진을 눈 속에 파묻는 감격의 순간을 맛보았지만 하산길은 고통 그 자체였다.


남봉을 내려서면서 산소가 바닥났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다리가 풀렸다. 고정로프에 하강기를 끼우는 대신 안전고리만 끼운 채 미끄럼을 타는 등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고 가파른 설릉에 앉아 깜빡하는 사이 몇 분이 지났다. 그때마다 허영호 대장은 “그러다 동상 걸린다”며 하산을 재촉했다.


발코니에 놔두었던 산소통을 갈아 끼웠는데도 컨디션이 별로 좋아지는 느낌이 오지 않았다. 7시간 만에 C4에 도착했을 때에는 먼저 내려온 셰르파들도 초주검 상태였다. 허영호 대장이 일어나서 물 끓이라고 소리쳐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그들 역시 거의 탈진 상태였다. 대원들과 함께 얼음을 녹여 물을 끓이고 라면을 끓였는데도 아무도 먹으려 하지 않았다. 허영호 대장이 닦달하자 우겨넣듯 조금씩 먹고 따뜻한 물을 마신 다음에서야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다.


가볍게 여기기 쉬운 양말과 장갑이 중요한 장비

 

이상이 ‘생초보’인 허재석씨의 등반과정이다. 이렇게 제천팀의 에베레스트 등반을 성공적으로 이끈 허영호 대장은 에베레스트 등반은 이제 아마추어 등산인들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내가 에베레스트를 처음 등반하던 1987년 겨울에는 모든 일을 대원들이 해결해야 했다. 개미굴처럼 복잡한 아이스폴에서 길도 찾아야 하고, 가파른 로체 서벽을 오를 때 짐도 날라야 했다”며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전혀 다르다.


이제는 식량과 장비 운반, 텐트 구축, 취사에 이르기까지 셰르파들이 어지간한 것은 다 세팅해 주고 가이드이자 보호자 역할까지 해준다”고 말한다. 허영호 대장은 “그렇지만 결국 등반자 스스로 올라야 하기 때문에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을 갖추고 자기 확보법, 주마 사용법, 아이젠 보행법 등에 대해서는 충분히 훈련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등정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체력을 꼽는다. 그리고 현지에서는 서둘지 말고 천천히 고소적응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BC까지 캐러밴할 때 역시 마찬가지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경험자의 동행은 필수. 날씨가 좋을 때는 누구든 관계없지만 갑작스런 일기 변화에 경험 없는 사람들은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고 그러다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게 허영호 대장의 말이다.

 

허 대장은 “지난해 봄 정상에서 마지막 캠프로 돌아왔을 때 셰르파들이 모두 드러누워 물을 끓일 사람이 없어 애를 먹었다”며 “이럴 때 얼음이나 눈을 녹여 탈수상태에 다다른 대원들에게 따뜻한 물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꼭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고산에서 식수가 제때 공급되지 않으면 극심한 고소증세를 유발해 위험한 상황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C4에서 하루 머무는 것은 제살을 깎아먹는 일이라 할 만큼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했으나 요즘 등반 경향으로는 꼭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2007년 봄 등정에 성공한 실버원정대 김성봉 대장 역시 마지막 캠프 도착 이튿날 저녁 정상공격에 나섰고, 2010 제천 원정대 역시 제트기류가 멈추기를 기다리며 하루 더 머물렀다. 몇몇 상업등반대의 경우 아예 C4에서 하루 쉬고 정상공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려면 보온력이 좋은 장비를 사용해야 한다. 고소내의에서 신축성이 좋은 바지와 티셔츠, 덧바지와 재킷, 그리고 우모복 등 모든 의류와 신발, 고소모자, 장갑 등은 영하 30도에서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제품이어야 한다.

허영호 대장은 “요즘은 장비가 워낙 좋아 검증된 제품이라면 큰 문제없겠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잘 맞는 장비를 선택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귀띔해 준다. 특히 동상이 걸릴 가능성이 높은 손과 발에 착용하는 장갑과 양말이 무척 중요하다고 말한다. 허 대장은 “제천팀 대원들은 모두 멀쩡했지만 같은 날 같은 루트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다른  두 팀 한국 원정대들 가운데 동상이 심해 귀국 후 손가락을 잘라낸 대원도 있다”고 밝혔다.


허영호 대장은 동상 원인 가운데 마지막 캠프에서 젖은 양말을 신거나 발에 땀이 많이 나는 체질일 경우를 가장 큰 이유로 들면서도 장갑과 양말을 잘못 선택해서 일어나기도 한다고 꼬집는다. 특히 화학섬유 제품은 사용 금물. 화학섬유 제품은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보온은커녕 오히려 차가워진다고 알려준다. 따라서 모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마지막 캠프에서 정상을 향해 출발하기 앞서 건조가 잘된 장갑과 양말을 갈아 신는 일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재수씨가 리드한 2007년 김해 플라잉점프 원정대는 대원 20명 가운데 서너 명을 제외하곤 대부분 아마추어 수준의 산악인들이었다. 그럼에도 10명이나 등정할 수 있었던 것은 등정일에 날씨가 좋기도 했지만 베이스캠프 진입에 앞서 얄라피크와 같은 곳에서 고소적응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기도 하다. 베이스캠프 진입 전 해발 5,000~6,000m 높이에 대한 고소적응은 요즘 들어 ‘필수과정’이다시피 하다.


김재수씨는 남동릉이든 북릉~북동릉 루트든 대부분 정상까지 고정로프를 깔아놓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실제 에베레스트에서는 자신의 컨디션이나 능력을 생각하지 않고 등반을 강행하거나 예상치 못한 악천후로 인해 일어나는 사고도 많지만 안전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특히 로프에 등강기를 제대로 못 거는 등, 자기 확보에 실패해서 일어나는 사고가 많다. 김재수씨는 “등강기 외에 확보줄 카라비너를 꼭 고정로프에 걸도록 하고, 등강기 역시 안전홀에 카라비너를 끼워 등강기가 로프에서 이탈하는 사고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잘 흘리는 하강기는 예비로 하나 더 가지고 다니는 게 불의의 사고를 막는 방법이라 말한다.


모든 사고의 중심에는 조급한 마음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 안전지대에 도착할 때까지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되며, 한 곳에서 너무 오랫동안 쉬는 것을 자제하고 꾸준히 움직여야 한다. 컨디션이 좋다고 앞사람을 추월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추월한 다음 리듬을 잃으면 호흡이 거칠어져 등반이 불가능해지기도 한다. 노멀루트 등반은 수많은 사람이 길게 줄지어 오르기 때문에 한두 명 추월한다고 크게 시간이 단축될 수 없다는 게 경험자들의 말이다.


추위에 견디며 굶은 상태로 20시간 이상 걷는 훈련

김재수씨는 “정상에 오를 때에는 하산길에 사용할 체력이 20%는 남아 있어야 한다”며 “올라갈 때 힘을 100% 사용하면 하산길에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다리가 풀린 상태에서 바윗길을 내려서다 넘어질 수도 있고, 다리가 꼬이면서 아이젠이 다른 쪽 바지에 걸려 넘어질 수 있다. 해마다 몇 건씩 일어나는 대표적인 사고 원인이다. 따라서 동료나 셰르파 등이 등정길에 “너무 지쳐서 내려가는 게 좋겠다”고 권하면 스스로 잘 판단해 결정하는 게 안전하다고 말한다.


김재수씨는 등반을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모자를 벗지 않고 가능한 한 머리를 감지 않는 등, 보온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산소마스크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귀띔한다. 세계 최고봉 등정을 위해 산소 장비는 필수. 그런데 산소마스크가 얼굴에 잘 맞지 않거나 혹은 레귤레이터나 레귤레이터와 산소마스크 연결호스가 고장 나 있다면 무용지물인 것이다. 따라서 김재수씨는 “캐러밴에 앞서 산소 장비를 철저히 확인하고, 산소마스크와 레귤레이터처럼 살짝 부딪치기만 해도 망가지기 쉬운 장비들은 단단한 용기에 담아 운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와 더불어 라이터와 칼과 같이 소홀하기 쉬운 장비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마지막 캠프에서 라이터가 없어 버너 불을 켜지 못한다면 물을 끓일 수 없어 결국 등반을 포기해야 하고, 강풍 등에 의해 로프가 뒤엉켰을 때 칼이 없다면 위기에서 빠져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2007년 실버원정대를 매니저로 인솔한 바 있는 유학재씨는 출국 전 적절한 체지방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두 달 안팎 걸리는 에베레스트 등반을 하는데 몸에 체지방이 너무 적으면 지구력이 떨어져 등반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씨는 원정에 앞서 훈련할 때는 체지방이 ‘10’ 가까이 내려가더라도 출국 전에는 ‘30’ 가까이 올라가도록 몸관리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고산등반가들이 동조하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또한 달리기를 하더라도 심폐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인터벌 훈련이나 언덕 달리기에 주력하고 복근력도 키울 것을 주문한다. 배에 힘이 없으면 제대로 걸을 수 없다는 게 유학재씨의 지론이다. 유학재씨는 마지막 캠프를 출발해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올 때까지 약 20시간 동안 굶으며 걷는 훈련도 서너 번은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 번은 끝까지 굶어보고, 그 다음에는 굶었을 때 조금 먹었는데도 힘이 솟는 간식을 먹어보는 등의 훈련을 통해 등정일에 컨디션이 떨어져 당황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유씨는 이와 함께 추위에 견디는 훈련, 아무 음식이나 잘 먹을 수 있도록 식성을 좋게 하는 훈련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학재씨는 “허영호씨가 제천팀에 적용했던 고소적응 스케줄과 마찬가지로 등정에 앞서 고소적응 과정이 끝나면 베이스캠프보다 낮은 곳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영양분을 섭취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유학재씨는 올해의 경우 마지막 로지인 고락셉(5,150m)을 베이스캠프로 이용하는 상업등반대도 있었고, 로부체 아래 평원 지대(약 4,500m)에 거대한 캠프를 설치해 대원들이 컨디션을 조절하게 하는 상업등반대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또한 등반 중 컨디션이 나빠지면 대장이나 다른 대원들에게 감추지 말고 털어놔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예기치 못한 사고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학재씨는 “실버팀 원정 당시 대원들이 쉽게 포기한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컨디션에 대해 솔직히 얘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날 버티다가 끝내 컨디션을 회복할 기회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막판에는 꼭 오르겠다는 의지가 성패  좌우

 

이렇게 등반법, 고소적응 과정을 비롯한 등반법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꼭 정상까지 오르겠다는 등반자 자신의 의지’라는 게 고산 등반가 대부분의 공통된 의견이다. 아무리 컨디션이 좋고 체력이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의지가 꺾이면 절대 오를 수 없는 곳이 세계 최고봉 정상이기 때문이다. 의지에 대한 강조는 14개 8,000m급 고봉 완등자이자 에베레스트 3회 등정자인 엄홍길씨나 박영석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 글·한필석 부장 / 월간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