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마운트 휘트니(Mt. Whitney·4421m)! *-

paxlee 2011. 8. 25. 21:47

 

                          마운트 휘트니(Mt. Whitney·4421m)!

 
저 산꼭대기의 ‘뱀파이어걸’이 부러웠던 이유
        초심자 이슬람 친구들과 휘트니 마운티니어스 루트 등반
▲ 마운트 휘트니의 동벽에서는 1930년대부터 고난도 암벽루트들이 개척되기 시작했다. 우측부터 마운트 휘트니, 킬러 니들(4346m), 크룩스 피크(4325m). 마운티니어스 루트는 제일 우측 설사면이다.

“투표합시다!”


가장 연장자인 비쇼르(46)가 다급하게 외친다. 정상까지는 고작 100여 m. 하지만 막판에 닥친 구간은 자칫 발을 헛디디면 한참을 굴러 떨어지게 생겼다. 비쇼르와 마흐무드(34)에게는 이렇게 살 떨리는 구간은 물론, 크램폰에 피켈마저 처음 써보는 산행이다.


 ‘이 사람들, 막판에 돌아서면 평생 후회할 건데 그걸 모르는군.’


내 감으로야 고도감이 꽤 느껴지긴 하지만 실제로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한국 사람들이었다면 밀어붙였겠지만 일단 어떻게 하는지 지켜본다. 찬성, 반대가 각각 하나씩, 기권이 둘. 내 차례다. 투표라니? 산에 오르는 데 투표가 웬 말이냐.


 “한 명이라도 안 올라가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등산 안 해요.”  그러자 노를 외쳤던 자말(28)이 진땀을 흘리며 우물거린다.  “아니, 나는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좋아요 좋아, 찬성! 갑시다.”


처음 접해 보는 급경사에 잔뜩 얼어버린 비쇼르는 딱하게도 겨우 한 발짝 떼어 놓기를 반복할 뿐이다. 모른 척 그를 마흐무드와 함께 로프로 연결시키고 잡아끌었다.


마운트 휘트니(Mt. Whitney·4421m)! 저 외딴 알래스카주를 빼고는 미국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 복판에 위치해 인기 있다. 하지만 오르기는 쉽지 않은데, 까다로운 입산 절차 때문이다. 하루 등반인원을 100명 이내로 제한하고 있고, 허가를 받으려면 수개월 전부터 신청을 해 놓고 추첨까지 거쳐야 한다. 산에 발도 내밀기 전부터 운이 따라야 하다니, 복권 놀이 같은 건 질색이었던 나는 언제 가보겠냐고 침만 삼켰을 뿐이다.


그런데 미국인 친구로부터 이 산에 오르자고 연락이 왔다. “허가서는?” 하루 전에 미리 가서 어떻게 해 보겠다는 것이다. 담 타 넘는 개구멍이라도 파 놓겠다는 것인가. “그럼, 루트는?” 마운티니어스 루트!


▲ 1 정상에 선 이슬람 친구들과 필자. 2 정상의 방명록을 작성 중인 필자.

마운티니어스 루트(Mountaineer’s Route)는 미국의 유명한 자연주의자 존 뮤어(John Muir)가 1873년 단독으로 개척한 루트다. 도대체 어떤 루트길래 ‘산악인의 길’이라는 이름까지 붙었을까? 여길 오르면 진짜 산악인이라도 된다는 뜻인지.


밤길을 꾸벅 꾸벅 졸면서 운전한 끝에 6월 27일 새벽녘 공원 입구인 휘트니 포탈(Whitney Portal)에 도착했다. 하루 먼저 왔던 일행 셋이 일어나 짐을 챙기고 있었다. 이키, 근처엔 진짜 곰이 어슬렁대며 돌아다닌다. 랜턴을 비춰도 도망갈 생각을 안 한다. 덕분에 늦게 도착한 유수프(28)와 나는 너무 피곤해 딱 한 시간만 차에서 눈을 붙이기로 했다.


자말은 친구 동생으로 알고 지내던 터였고 나머지 셋은 처음 보는 이들이다. 수염이 텁수룩한 유수프는 자신을 “반만 미국인”이란다. 알고 보니 부모 시절이나 어렸을 때 미국으로 넘어 온 이민자들로 모두 시리아, 파키스탄 등 이슬람권 출신이다. 무슬림은 하루 다섯 번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쪽을 향해 기도하는데, 첫째 기도는 동틀 무렵인지라 새벽부터 부지런을 떤다. 뭐라고 기도문을 외는지 나는 도통 관심은 없지만, “새벽 5시 출발!” 하면 떠억 준비를 마치고 정렬해 있으니 이슬람과 등산은 분명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서로 부대끼며 사는 모양새가 전형적인 미국인들보다 친근감이 간다.


휘트니를 오르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남쪽으로 휘돌아 오르는 일반등산로를 따르는 것(왕복 35km)이고, 다른 하나는 동쪽 계곡인 노스포크(North Fork)계곡을 따라 오르다가 전문등반기술이 필요한 휘트니 동벽 쪽으로 오르는 것이다. 먼저 도착한 일행이 받아 놓은 허가서는 당일 입장권으로 그것만으로는 야영을 못 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다들 별 걱정을 하지 않는다. 알고 보니 일반등산로에는 국립공원 출장소가 등산로 중간에 있어 입산증을 확인하는데, 노스포크계곡길은 확인하는 곳이 없다. 오르내리며 마주친 여러 사람들도 입산허가증 없이 등반하고 있었다. 대신 잡히면 벌금이 꽤 세고 징역을 살 거라는 경고판이 곳곳에서 으름장을 놓는다.


▲ 마운티니어스 루트의 트래버스 구간을 마지막으로 올라서는 비쇼르와 마흐무드.

깊은 계곡길답게 내내 가파른 오르막이다. 해발 2,500m의 휘트니 포탈에서 출발, 세 개의 호수를 지나 올라야 한다. 보통 등반가들은 두 번째 호수나 마지막 호수인 아이스버그(Iceberg)호수 근처에서 캠프를 한다. 거리는 10km도 안 될 것 같은데, 고도차가 만만치 않다. 아이스버그 호수는 해발 3,800m에 위치해 있다. 즉 고도 1,000m 이상을 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계곡을 서너 번 건너야 하는데 물이 적지 않다. 한사코 신발을 적시지 않으려고 스틱으로 온갖 기교를 부려보다가 실패했다. 눈 녹은 물이 만들어 낸 우렁찬 폭포를 지날 때는 다 젖기도 했지만 오히려 시원하다. 바위 사면을 아슬아슬하게 기어오르기도 한다. 경치는 또 어떤가! 마땅히 눈 둘 곳을 찾기 어렵다. 눈, 손, 발이 각자 바쁘니 지루하지 않다.


내려오는 팀들이 여럿이다. 눈 상태가 어떤지, 캠프지로는 어디가 좋은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지막 400피트’ 상태가 어떤지 한쪽은 묻고, 다른 쪽은 말해 주고 싶어 안달이다. 마운티니어스 루트는 마지막 400피트 구간이 가장 어려운 구간인데, 다들 인터넷으로 충분히 검색하고 온 모양이다. 눈 상태가 좋다고 다들 엄지를 치켜세운다. 우리는 답례로 등정 축하 인사를 아끼지 않는다.


마루금 사이로 휘트니 동벽과 침봉들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다가 마침내 쏟아질 듯 위압적인 자태를 드러낸다. 잠깐씩 선 채로 숨을 고르다 보면 오후의 마른 햇볕에 벽이 반짝인다. 쳐다만 봐도 마음을 뺏기고 만다. 웅장한 벽과 그 속의 크랙들 앞에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동벽 바로 아래인 아이스버그호수까지 가능하면 올라 보려고 은근히 일행들을 재촉했는데 비쇼르가 자꾸만 아이스버그는 물을 구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한다. 가만 보니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둘째, 셋째 호수 중간 즈음에 캠프지를 정했다. 해발 3,600m. 슬슬 숨이 가빠오긴 한다. 여기저기에서 눈 녹은 물이 졸졸졸 흘러 물은 구하기 어렵지 않겠다. 다들 고산등반 경험은 별로 없어 배낭 내려놓고 숨쉬기에 바쁘다.


등반 초짜인 무슬림들을 이끌고 앞으로


이튿날 새벽녘 나를 제외한 네 명은 어김없이 뜨는 해를 바라보며 기도한 뒤 출발했다. 저렇게 단체로 기도까지 했는데 오늘 모두 무사히 잘 올라가겠지? 동쪽을 면한 등반루트는 해를 직접 받지만 그래도 오전 중에는 눈 상태가 괜찮다. 뽀득거리는 적당히 굳은 눈에 경쾌한 발걸음을 옮긴다. 빙하가 없으니 크레바스 걱정은 없다.


마지막 호수까지 오르니 올라야 할 루트가 보인다. 700~800m가량의 쿨와르, 일명 ‘슈트(chute)’는 말 그대로 꽤 고역이다. 40도 정도 되는 경사가 계속 이어진다. 나는 제일 처지고 겁이 많은 비쇼르를 로프로 묶어 끌다시피 올라갔다. 자꾸 쉬어 가자 하고, 얼마 못 가 힘들다고 눈 속에 얼굴을 파묻고 몇 번이나 구역질을 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내가 너희들에게 방해되는 거 같아. 내가 먼저 내려가는 게 낫지 않을까?”


비쇼르는 어느새 비관적으로 변해 있었다. 어느 정도 남았는지 자꾸 묻는다. 나도 처음이지만 “저기만 오르면 다 왔다”고 동료들을 격려한다.


“난 46세야. 이런 거 하기에는 너무 늙었어.”


그 나이로 나이 탓이라니, 한국 산에서 그런 소릴 했다간 기필코 봉변을 당하리라. 어쨌든 저울질을 시작한 비쇼르는 내려가야 할 이유를 계속 찾는다.


“에베레스트 최고령 등정자가 몇 살인 줄 아세요? 76세예요. 아저씨는 나이가 많아서 못 올라가는 게 아니라고요!”


▲ 1 휘트니 포탈은 거대한 협곡으로 양쪽 벽에 암벽등반 루트들이 개척되어 있다. 2 해발 3600m 지점에 텐트를 쳐 놓고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궁색한 이유에 교과서 같은 훈계지만, 이런 대화를 통해 그는 힘든 것을, 나는 나대로 답답함을 잠시 잊는다. 결국 어느새 슈트 정상부 노스콜이다. 한 숨 내려놓기 무섭게, 하얗게 펼쳐진 서쪽과 북쪽의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눈앞에 닥쳐온다.


마지막인 듯한 다음 구간을 보니 훨씬 가파르다. 여기가 사람들이 말한 마지막 400피트다. 하단부는 얼음이 뒤섞인 바위지대고 상부는 설벽이다. “크램폰에 프런트 포인트가 없어서 왼쪽 바위로 로프를 써서 올랐어요” 어제 만난 사람이 해줬던 얘기가 머리를 스친다. 저 설벽구간은 프런트 포인트로 찍어 올라야 할 정도로 경사가 급하다는 뜻이로군. 혼자라면 후딱 오르겠지만 이 일행들이 과연 올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자세히 보니 우측으로 설사면을 트래버스하는 발자국이 뻗어 있는 게 눈에 든다.


“자말, 저 가파른 쪽보다는 이쪽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지?”


“맞아… 그런데 여기도 너무 가파르지 않나? 저 설사면 끝에는 뭐가 있는데?”


“이 정도면 괜찮아. 로프로 연결하고 갈 건데 뭘. 조금만 가면 저 뒤 완만한 등산로와 연결될 거야.”


자말에게 물어보지 말 걸 그랬다. 결국 망설이는 자말을 보고 비쇼르가 겁을 낸다. 그가 투표를 하자고 하니 자말은 “No”에 한 표를 던진다. 산에서 투표는 무슨 투표, 한 명 남김없이 모두 동의해야만 간다고 내가 생떼를 부리니 결국 군말 없이 모두 내 뒤를 따른다. 과연 트래버스는 정상까지 완만하게 이어지는 서면까지 300m가량으로 곧 끝났다. 다들 긴장에 떨었는지 완만한 서면에 올라서자 희색이 만연하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내려갈 체력을 비축해야 해요.” 그외에도 “재킷을 입어라, 간식을 먹어라 물을 마셔라”, 내 간섭을 이제는 잘도 따른다.


▲ 노스콜에서 만난 체코 출신 여성 야나. 그녀에게 뱀파이어걸이란 별명을 붙였다. 정상에서 비박하려고 해가 지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뱀파이어걸과의 만남


 12시 반, 출발한 지 일곱 시간 만에 드디어 정상이다. 생경한 낮은 기압에 다들 헐떡이며 정상의 기쁨을 함께 만끽한다. 산의 정점도, 장엄한 파노라마도, 힘들게 올라온 보답으로 기쁘다. 그것뿐이랴, 서로의 기쁨 속에서 각자의 기쁨을 확인한다.


“둘만 이리로 가고 셋은 등산로로 내려가서 오늘 밤 차에서 만나면 어때?”


아까 올랐던 가파른 사면을 도로 내려가려고 로프를 묶던 유수프가 갑자기 딴소리를 한다. 비록 로프로 연결하긴 했지만 미숙한 비쇼르나 마흐무드가 미끄러질까봐 걱정이 되는가보다. 하지만 다들 이구동성으로 “아냐! 왔던 길로 끝까지 내려가야지!” “더는 따로 운행하지 말자”는 둥, 오를 때와는 딴판이다. 결국 다섯 명 모두 로프로 연결하고 가파른 트래버스 구간을 내려왔다. “로프로 연결하니까 뭔가 하나가 된 느낌이야”하고 자말이 감탄한다.


노스콜에 내려오니 웬 여성이 홀로 앉아 쉬고 있다. 그런데 그에게 다들 반갑게 아는 척을 한다. 알고 보니 대단한 여성이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온 야나라는 이로, 나와 마흐무드를 제외한 세 명은 3주 전에 로스앤젤레스 근처의 3,500m 고산을 훈련 차 등반했는데, 이때 정상에서 만나 함께 내려와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야나는 그 때 산 정상에서 홀로 비박했다.


“이번에도 정상에서 잘 거예요?”


자말의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이 그럴 거란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요?”


이번엔 내가 물었다.


“석양과 일출 보는 게 좋아서요.”


대답 한 번 멋지다. 정상에 텐트를 치려고 정상 바로 아래까지 느지막이 올라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며칠 뒤 페이스북에 휘트니 등반 사진을 올리니 한 지인이 댓글을 남겼다. “자유로운 영혼…” 정말 내 등반이 자유로웠나? 높은 산 올라간 것만 두고 마냥 자유로웠다고 할 수 있을까? 나보다는 이 야나라는 아가씨야말로 진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가 아닐까. 저 먼 바다 위를 홀로 나는 새 알바트로스처럼. 갑작스레 먼 나라에서 온 여자의 머릿속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차 있는지 알고 싶어졌다.


▲ 그림같은 첫 번째 호수를 지나면서부터는 가파른 설벽을 차고 올라야 한다.

 

오후가 되면서 슈트가 온통 질퍽해졌다. 유수프와 자말, 마흐무드에게 간단하게 글리세이딩과 활락정지 기술을 가르쳐 주고는 알아서 가라고 하니 금세 눈앞에서 사라진다.


“아저씨는 절대 미끄러져 내려갈 생각하지 마세요.”


불쌍한 비쇼르는 지쳐 다리가 풀린 나머지 가파른 설사면을 걸어 내려갈 힘이 없다. 슬링으로 가깝게 묶어 미끄러질 때마다 잡아채면서 함께 내려왔다.


“아저씨 평소에 운동 좀 하세요.”


슬며시 짜증이 일어, 툭 튀어나온 아랫배를 보다 못해 잔소리를 던졌다.


“내가 원래는 안 이랬어. 그런데 두 달 전에….”


늦둥이를 봤는데 그만 태어나면서부터 3주일 동안 병을 앓다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동안 꼬박 병원에서 밤을 지새우느라 몸이 망가졌다는 얘기. 그런 사정이 있으셨군. 투잡을 뛰느라 바빠 운동할 시간은 없는데 가끔 산에라도 오지 않으면 스트레스로 미칠 것 같다고 한다. 스트레스 속에 산 채로 미쳐가는 일상, 그 속에 죽을 고생을 다해 올라갔다 온 정상. 비쇼르의 휘트니 등반이야말로 진정 자유로워지고픈 영혼의 몸짓이리라.


텐트로 먼저 돌아와 휘트니 꼭대기에 걸린 해를 겨우 잡아 신발을 벗어 말려놓고 다른 이들을 기다렸다. 모두들 완전히 진이 빠졌는데, 특히 마흐무드는 오자마자 텐트에 드러누워 음식도 제대로 못 먹는다. 한국 라면을 끓여주니 다들 맛있다고 감탄한다.


“한국 라면은 국물이 회복에 아주 좋아.”


허풍을 치며 마흐무드에게는 그 짠 국물을 실컷 먹였다. 문득 석양이 걸린 휘트니 정상을 바라보며 묻는다.


“저 여자 안 추울까?”


“뱀파이어 걸이라 안 추울지도 몰라.”


흡혈귀가 동유럽 전설이라서, 그녀가 체코에서 왔기 때문에 금세 뱀파이어라는 별명이 붙었다. 뱀파이어 걸이 왜 저리도 높은 산꼭대기에서 홀로 자려 드는지 다들 아리송해하긴 하지만, 적어도 그쪽 캠프지가 갑작스레 부러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녀가 그곳에서 맞을 일몰과 일출은 과연 어떨지. 아마도 그 붉어진 햇살 아래서 대지를 높이, 멀리 박차고 날아가는 자기 깃털을 찬찬히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깃털 사이로 흐르는 바람에 온 신경을 집중하면서 말이다. 다만 필시 몹시도 외로울 텐데. 지는 해는 그녀의 자유보다도 외로움을 전해줘 안쓰럽다.


이튿날 하산길은 금방이다. 생고생을 한 비쇼르는 기분이 좋았는지 연신 “자네 없었으면 우린 모두 못 올라갔어. 자넨 정말 성실한 친구야”라고 한다. 20여 년 전 미국에 온 뒤로 나쁜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한국에서 온 젊은 친구가 자기를 끝까지 도와줬다고 고마워한다. 그러더니 아내가 요리를 잘한다면서 집에 초대하겠다는 것이다. 고생 속에 얻은 정상의 기쁨이 그를 조금이라도 자유롭게 해 주기를. 휘트니의 날카로운 동벽이 돌아가는 차창 안에서도 올려다 보인다.


마운트 휘트니 산행 정보


동벽에 6개 루트 있어
마운티니어스 루트는 등반 입문 코스


마운트 휘트니(4,421m)는 미국 본토 최고봉으로 캘리포니아주의 시에라 네바다 산맥 남부에 위치한다. 이 산맥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341km의 존 뮤어 트레일 상에 있다. 특히 북미에서 가장 낮은 해저 86m의 데스밸리 국립공원(Death Valley National Park)과 고작 136km만 떨어져 있어 대조를 이룬다. 인요 국유림(Inyo National Forest) 관할 아래 있다.


휘트니의 동벽에는 6개의 루트가 있는데 이 중에 마운티니어스루트, 이스트 페이스(III, 5.7), 이스트 버트레스(III, 5.7)가 자주 등반된다. 마운티니어스루트는 이름처럼 전문등반의 입문 코스처럼 여겨진다. 보통 아이스버그호수에서 2박을 하지만 휘트니 포탈에서 출발해 당일로 등정을 마치고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등반 시즌은 5월에서 10월이며, 난이도가 높지만 동계등반도 행해진다. 공원 입구인 휘트니 포탈에는 몇몇 야영장이 있고 주변은 거대한 협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양쪽 벽에 10피치 이상 되는 암벽등반 루트들이 있다. 암벽등반가들에게 이 지역은 등반 대상지로서 더 인기 있다. 암벽등반을 위한 별다른 허가는 필요 없다.


등반허가  등반허가는 꽤 미리부터 준비해야 한다. 11월 2일부터 4월 30일까지는 예약이 필요 없고 현장에서 허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시즌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 예약은 6개월 전부터 할 수 있는데, 미국 국유림 홈페이지(http://www.fs.fed.us/)에서 서면을 출력해 직접 우편으로 부쳐야 한다. 취소 등으로 여분이 있을 경우 등반 당일이나 전날 아랫마을 론 파인(Lone Pine)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즉석으로 허가서를 받을 수도 있다. 입산료는 1인당 15달러이며 1팀 최대 15명까지 예약할 수 있다.


         - 글·사진 / 오영훈 서울대 농대 산악부O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