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해외등반] 유럽 알프스 [2] *-

paxlee 2011. 9. 17. 21:29

 

                                           [해외등반] 유럽 알프스

 

 ‘우먼 알프스 펀 익스페디션(Woman alps Fun Expedition)’

 

명희 언니와 채미선 언니가 교대로 선등을 나서며 등반의 흐름을 리드한다. 빠른 등반을 위해 언니들도 선등을 서며 퀵을 잡는다. 나와 화영 언니도 설치된 장비로, 때로는 발 슬링까지 써가며 인공등반으로 오른다. 우리가 4인1조로 등반하기엔 무리다. 크랙 사이에는 아직도 남아 있는 우드 하켄의 흔적들이 보인다.

수도승의 고깔모자와 같다는 뜻의 그랑카푸생은 1951년 21세인 발터 보나티와 그의 친구 지고에 의해 세 번 만에 동벽이 초등된다. 보나티는 익스펜션 볼트 사용은 등반기술의 퇴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불가능의 정복’이 아니라 ‘불가능의 제거’로 자기기만이며 일종의 사기술이고 전통적인 등반 윤리의 파괴이며, 나아가 불가능에 도전하려는 동기부여나 용기를 말살시키고, 루트개척의 통찰력이나 판단력을 도외시해 모험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했다.

보나티가 말했던 퇴보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으로 모든 모험 자체를 부정한 채 정상만을 향하는 내 모습이 한없이 씁쓸하다. 하강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정상에만 집중한다. 결국 야간등반으로 이어졌다. 헤드랜턴이 켜지자 우리의 등반을 지켜보던 설원 위의 작은 위안과 같던 불빛 두 개가 산장으로 되돌아갔다. 자정 10분 전에 정상 직전 작은 동굴의 비박지를 찾았다. 수통에 남은 한 모금의 물을 돌려가며 말라붙은 목젖을 축인다.

▲ 그랑카푸생 트레버스 구간을 등반중인 채미선 대원 뒤로 당뒤제앙이 조그맣게 보인다.
 
예상치 못했던 정상에서의 비박인지라 우모복도 부족하고 암벽화만 신은 채 밤을 보내야 했다. 새벽이 되니 당뒤제앙에서 번개가 치며 눈이 내린다. 번개의 유도체가 될 수 있는 장비들을 배낭에 담아 가능한 먼 거리에 떨어뜨렸다.

동이 터오기 시작하며 눈발이 굵어진다. 등반루트의 뒷면을 돌아 하강 포인트를 향해 등반을 한다. 금방 손이 곱아온다. 하강 포인트로 돌아서자 눈보라가 친다. 암벽에 우박 섞인 빗줄기가 세차게 부딪혔다. 오버행 하강이이고 초행이라 하강 포인트도 찾아야 한다. 진퇴유곡의 상황이다. 이곳에서 ‘구조요청’이라는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다시 백을 하여 적당한 테라스를 찾아 7시간가량 헬기를 기다렸다. 이런 날씨엔 헬기도 접근이 어려워 오후 4시가 되어 결국, 하강이 아닌 탈출을 시도한다.
              
시계추처럼 흔들리며 서서히 오버행을 내려선다. 하강기를 통해 물먹은 자일에서 빠져나오는 물줄기가 손목깃을 타고 들어 가슴에 와 젖어든다. 평소에 손발이 차가운 채미선 언니는, 하강하며 “영미야. 나 발가락 없으면 등반 어떻게 하냐?”고 한다. 발가락이 굉장히 시린가보다. 아니 칼로 그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언니. 발가락 아무나 쉽게 안 잘라요. 걱정 말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10회의 오버행 하강을 하고 밤 9시가 되어 땅에 내려선 순간 모두들 신발을 벗고 우모복 속에서 발을 보호했다. 전날 아침 8시에 암벽화를 신고 37시간 만에 다시 신발을 갈아 신고 땅에 내려섰다.

남겨두고 간 물과 간식으로 요기한 후 밤의 어둠과 안개에 가려진 그랑카푸생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뜬다. 화이트 아웃으로 한 시간 반 거리의 헬브르너 케이블카 스테이션을 찾지 못하고 자정 30분 전에 설동을 팠다. 처음엔 대충 설면을 깎아 체온에 의지해 배낭을 깔고 앉았다. 그러나 한 시간 만에 살랑 바람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이 깨었다. 차라리 움직이는 편이 낫겠다.

▲ 그랑카푸생 하강을 준비할 무렵 비에 젖은 눈들이 암벽화에 스미고 금새 바위에 눈이 쌓였다.

나는 블레이드도 없는 아이스 바일을 들고 설동을 파기 시작했다. 잠시 후 채미선 언니가 장갑이 다 젖어 맨손으로 헬멧을 들고 설동 파는 작업을 도와 줘 세 시간 만에 소형 설동이 만들어졌다. 설동을 파며 갈증에 눈을 좀 집어 먹었더니 몸이 춥다.

날이 밝아오자 밖에 있던 명희 언니가 흥분된 목소리로 “사람이 오고 있다”고 한다. 설동 밖으로 나서니 세 명의 남자가 온다. 화이트 아웃에 방향과 거리 감각을 잃었지만 우리는 산장을 향하고 있었고 텐트까지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추위에 떠는 우리를 보더니 물과 비스킷을 주며 자신들은 빙하 트레킹을 할 거라 여유가 있다며 우리의 텐트가 보이는 곳까지 데려다 주었다. 허술하게 쳐 두었던 텐트가 약 10m 정도 이동했다. 길옆에 텐트를 쳤더니 누군가 스틱을 사용해 텐트를 고정해 주었다. 고마운 일이다.

2일 밤을 비박하며 한 시간을 자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텐트가 사라지고 없었다면 그 허탈감이란……. 야간등반, 비박, 구조요청, 탈출, 설동 등 우리 나름대로의 알프스 5종 세트를 지나치도록 뻔뻔하게 즐기고 돌아왔다. 텐트를 다시 고쳐 치고 침낭 속에 피곤한 몸을 던져놓고 나니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와 있다.

좋은 기운을 가득 담아가는 알프스 등반

5종 세트로 지친 몸을 회복한 후, 마지막 남은 일정동안 부담 없이 편안한 등반을 하기로 했다. 토리노 산장에서 산장 밥도 먹어보고 주변 풍광이 좋다는 당뒤제앙(Dent du Geant·4,013m)을 등반하러 갔다. 토리노 산장에서 에베레스트를 여성 최초로 등정한 다베이 준코 여사도 만났다.


▲ 당 뒤제앙 정상에서 후원사 깃발을 든 대원들. 성모마리아상 뒤로 그랑드조라스가 보인다.
당뒤제앙은 정상까지 파이프 굵기의 고정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많은 손님과 가이드들이 줄을 서서 정상으로 향하고 있었다. 알프스답지 않은 모습이다. 로프의 중간 확보물에 장비를 설치하며 등반하는 화영 언니의 뒷모습이 힘이 넘친다. 화영 언니는 우리 팀의 비타민, 박카스 같은 존재다. 늘 시들지 않는 유머감각과 넘치는 끼로 사나운 분위기도 잠재우는 매력이 있다. 화영 언니가 없었다면 등반하며 웃을 일이 반의반도 안 되었을 거다.

정상엔 성모마리아상이 이탈리아 쿠르마이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가운데 청명한 대기 속에 펼쳐진 정상의 파노라마들이 압권이다. 에귀디미디에서부터 타귈과 몽블랑, 그랑카푸생, 제앙빙하와 그랑드조라스, 이탈리아 저 너머의 산군들 등. 히말라야와는 다르게 짧은 어프로치로 다양한 등반과 풍부한 경치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알프스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 당뒤제앙 정상부에 올라서고 있다.

이번 등반에서 많은 에너지를 충전하고 돌아가는 기분이다. 등반의 어려움을 떠나 좋은 기운들을 가득 담은 느낌이다. 사실 등반하러 나와 오랜 시간을 지내다보면 서로 마음에 안 맞는 부분이 있다. 원정이란 등반을 하며 서로의 간격을 좁혀 나가고 나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숨을 쉬려면 마신 숨을 다시 내뱉어야 하듯이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얻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희생이 있어야 하나가 되건만 나는 스스로를 얼마나 버리고 가는지 부끄러운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원정대 명칭 2011 Woman Alps Fun Expedition

대원, 소속 이명희(노스페이스), 채미선(골수회), 한미선(한산악회), 서화영(설우산악회), 김영미(강릉대산악부 OB)

대상지 유럽 알프스산군 샤모니 중심

등반기간 2011.7.12~8.12

결과 코스믹 리지, 에귀디미디 레뷔파 루트, 그랑카푸생 보나티 루트, 당뒤제앙 등정

후원 노스페이스

등반정보 보험 CAF(Club Alpine Francais)에서 9월 말부터 다음해 9월 말까지 1년 단위로 가입하며 유럽 전 지역에서 헬기구조, 병원비, 산장 할인 등을 받을 수 있다. 가격 66.47유로

멀티패스 케이블카를 탈 때마다 표를 끊지 않고 5회, 10회, 15회 등으로 묶어서 끊으면 저렴하다. 연속과 비연속으로 나뉘어 있고 하루에 몇 번을 타든지 하루를 1회로 본다. 단 샤모니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 글·/ 김영미(강릉대산악부OB) / 사진·원정대 -

             -  원정대 / 2011 Woman Alps Fun Expedi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