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의 산행기

-* 오늘은 북한산 북한산성 *-

paxlee 2012. 2. 26. 21:05

 

                           오늘은 북한산 북한산성

 

[화계사-범골약수터-칼바위능선-문필봉-칼바위봉-북한산성길-보국문-대성문-대남문-허리길-

대동문-칼바위-화계사]

 

지난 주에는 남한산 남한산성길을 걷었고, 오늘(2/26)은 북한산 북한산성길을 걸었다. 이 두 산성은 조선조 시대에 쌓은 대표적인 산성이다. 산행을 하다보면 산객은 산성길 보다는 북한산의 정상 백운봉이나, 그 외의 다른 봉우리나, 산의 능선을 걷는 산행을 즐겨 하는 편이다. 북한산의 산성은 우리의 산성 가운데 가장 튼튼하고 장대하고 견고하며 그 건축미가 아름답기도 하다. 

 

백운봉아래 위문에서 부터 용암문-대동문-보국문-대성문-대남문까지 이어지는 북한산성은 서울의 역사만큼이나 우리의 전통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청수동암문에서 북문까지는 아직 복원이 되지않고 있다. 오늘은 산행코스를 화계사-범골약수터-칼바위능선-문필봉-칼바위봉-북한산성길 통문을 올라서서 좌측으로 대남문을 향해 북한산성 길을 따라 걸었다.

 

산성의 높이는 바닥에 석축이 놓이고, 그 위에 다섯줄의 돌이 쌓이고 그 위에 지붕처럼 잘 다듬어진 넓은 돌판이 덮혀있다. 가슴높이의 성벽을 따라 걸으면서 서울의 시내를 내려다 볼수있다. 산성의 능선길은 편하게 걷는 능선이 아니고 능선을 따라 가파른 돌 계단길을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기도 한다. 높은 곳에는 곡장이라는 것이 형성되어있어 그곳에서 칼바위를 바라보는 멋이 즐겁다. 

 

그곳에서 잠시 쉬면서 서울을 조망해 보고,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 들은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기서 내려가면 보국문이다. 보국문에서 다시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심하고 계속 돌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 산성길에는 언제나 등산객이 많이 걷는 길이다. 산행은 혼자서 혹은 두 서너명이 걷기도 하고, 대부분은 산악회 동호인들이 무리를 지어 걷는다.

 

그 경사길의 정상에 올라서면 산성길에서 서울을 조망하기 좋은 곡장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 곡장에는 산성보다 높은 바위가 솟아있어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전망대 안내판의 사진설명을 확인하면서 서울의 둘러보는 조망권은 일품이다. 오늘은 날씨가 청명하지 않아 가시거리가 좋지않았다. 그러나 관악산 청계산까지 서울의 모습은 한 눈에 들어왔다. 

 

                 

                                      4대문 중 임금이 출입하던 대성문

 

다시 내려가면 대성문이다. 대성문은 문루에 올라가지 못하게 막혀있다. 대동문이나 대남문 등은 올라갈수 있는데. 대성문은 유일하게 임금이 출입하던 문이라 막아놓은 것 같다. 여기서 다시 오르면 보현봉이 건너다 보이는 능선 정상에 올라선다. 이쪽에선 보현봉(717m)과 문수봉(727m)이 양쪽에 우뚝 자리를 잡고 서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구기동으로 하산을 하지만, 문수봉에서 비봉쪽으로 가는 분들도 많다. 또 백운봉 정상을 향해 걷기도 한다.

 

여기서 내려가면 대남문이다. 내려가는 길엔 얼음이 박혀 미끄러웠다. 대남문에서 조금 쉬고난 후 여기까지 산성길을 걸었으니 다시 대동문을 향해 허리길을 걸어서 대동문에 들렀다가 칼바위 통문을 지나 칼바위-화계사 방향으로 하산을 하였다. 산길엔 낙엽이 깔려 가을의 정취가 느껴지고, 개울에 흐르든 물은 하얗게 얼음으로 덮혀있어 겨울의 맛이고, 날씨는 따스하여 봄의 정겨움이 느껴지는 산행이었다.

 

북한산성은 일정치 않은 다양한 모양의 규격의 석벽을 일정한 형태로 쌓아나갔다. 돌과 돌을 이어붙인 면의 간격이 없이 옆면으로 이어나간 모양이나 높이 쌓아 올라간 모양이 너무 정교하게 쌓았다는 것에 석수변수(石手邊首)의 기공이 놀랍다. 자세히 살펴보면 대동문에서 칼바위통문 못미쳐까지 새로 신축한 곳엔 돌과 돌 사이에 세멘트같은 것으로 이어붙이기를 한 것이 표가 난다.

 

북한산성은 지금으로 부터 300년전 1711년 (숙종 37년) 음력2월에 축성하기로 결정하고, 음력3월에 축성의 착수를 명하여, 음력4월에 시작하여 음력9월에 완료하고, 이듬해에 임금이 행차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 산성은 전시에 임금이 거처하고, 만일의 경우 도성의 백성도 수용함을 목적으로 하여 축조하였다. 성의 둘레는 7,620보(步/12.7km)이며, 성문(門)은 14개, 장대(將臺)는 3개, 곽성(郭城)은 26개, 우물 99개가 있었다.

 

그러나 120여칸의 행궁과 부속건물은 오랜 세월을 견디어 내지 못하고 무너지고 허물어져 그 터만이 확인 될 뿐이다. 북한산은 거대한 성채다. 거대한 바위군이 천연의 성벽을 이루고, 그 끊어진 곳을 따라 사람이 쌓아올린 산성이 들어서 있다. 산성은 산의 낮은 곳과 높은 곳을 오르내리며 산세를 따라 출렁이며 이어지는데, 산 등줄기에 단단하게 박힌 돌 구조물은 잿빛 도시를 발아래 두고 옛 왕도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

 

북한산성이 복원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부터다. 서울시는 북한산성 전체 12.7㎞ 가운데 서울지역 5.5㎞ 구간에 대한 복원공사를 단계적으로 진행해오고 있다. 1단계로 1994년까지 종로구에 있는 대남문과 대성문, 대동문 등의 성문과 450m를 보수했고, 1995~2002년 2단계로 용암문과 청수동 암문 등 2015m를 복원했다.

 

3단계로 2003년부터 동장대와 용암봉에 있는 성곽 1295m를 복원하였으며, 이어 2020년까지 종로구 대남문에서 은평구 대서문까지 이르는 성곽 서쪽 부분 1688m 구간의 복원공사를 할 계획이다. 경기도 고양시도 1915년 폭우로 무너져내린 행궁을 복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버려진 폐허에서 300살 옛 성벽은 그렇게 다시 태어나고 있다. 

 

북한산성을 보호하기 위해 1968년 12월5일 북한산성을 사적 제162호로 지정하였다. 그리고 1983년 8월2일에는 좀 더 넓게 북한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바 있다. 그것은 북한산이 자연생태계와 역사 문화가 어우러진 대표적인 자연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또한 2007년 6월8일 북한산성 행궁지를 사적으로 지정하였는데, 그것은 장기적으로 행궁지를 복원하고자하는 의도로 보인다.

 

- 참고자료 / 오심죽의 삼국시대 북한산의 북한산성의 역사 -

                / 바른뉴스 김경욱 기자의 300년 굴곡의 역사 뒤로하고, 북한산성의 재탄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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