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나는 산악인이다. [1] *-

paxlee 2012. 10. 26. 22:56

 

 

                  나는 산악인이다.

 

       수많은 봉우리가 기다리고 있는…산, 산, 산”

 

 

       쿰부 히말과 롤왈링 히말의 조망대 고쿄리, 낭파라 라운드 트레킹

 

한국 최고의 고산등반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김창호씨가 네팔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오로지 고산 등반만을 위해 드나들었던 네팔 쿰부히말, 롤왈링히말 등지를 아내와 더불어 보름간 돌아보았다. 수많은 등반을 통해 쌓아온 그의 네팔에 대한 식견은 남다를 것인즉, 그의 네팔 트레킹 얘기를 들어본다.<편집자 주>


안달이 나 올랐던 곳에서 호기심을 채운 후의 하산 길은 뻥 뚫린 가슴속으로 세찬 바람만이 스친다. 고쿄로 내려왔다. 사라진 호기심은 다른 열정으로 살아난다. 토마토 수프와 달밧으로 늦은 아침식사를 마친 뒤 디디(네팔 히말라야 신혼여행에 나선 아내)와 가이드, 포터는 로지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나는 12시께 초오유와 고줌바캉 남면 베이스캠프로 오를 채비를 한다. 베이스캠프는 6번째 빙하 호숫가에 있다. 로지 주인은 거기까지 왕복하는 데 잰 걸음으로 하루는 족히 걸린다고 했다.


곧 비가 쏟아질 듯 날씨는 음울하다. 둘이 와서 혼자 또 어디론가 가야 하는 내 뒷모습을 보는 디디의 표정도 날씨와 같다. 나는 산악인이다. 수많은 봉우리들이 기다리고 있는 이곳까지 와서 오후 한나절이라도 쉴 수는 없다. 빙하의 언저리를 따라 내달린다. 파키스탄을 홀로 돌아다니던 옛 모습 그대로다.


▲ 낭파라가 보이는 캉충은 룽덴에서 캠핑을 하며 3일 거리인데 하루에 다녀오는 계획으로 바꿨다. ‘치고 빠지기’ 작전이다. 캉충에서 하산 중이다.

몬순의 가스로 어둑한 사이로 네 번째 호수(Thonak Tso·4,834m)가 나타나고 키 높이의 케른에 ‘82 한국 고줌바캉 원정대장 박동규를 추모하며…’ 라고 적힌 동판이 붙어 있다. 연이어 다섯 번째(Ngozumba Tso·4,950m) 호수가 나타나고 언덕을 오른 곳의 상부 빙하 퇴석 분지에 여섯 번째 호수(Gyazumba Tso·5,215m)는 거의 말라 있다.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단지 서쪽 구름 밑으로 숨나고개(Sumna Pass·5,510m)의 얼음 빙하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저 고개를 넘어 숨나빙하를 횡단하면서 낭파이고숨 세 연봉을 지척에 두고 곧장 루낙(Lunak·5,090m)에 도착하는 길이다. 원래 트레킹 계획의 일부분이었으나 남체바자르에서 1차 계획을 변경해서 갈 수는 없다.


바위에 올라앉자 초오유 남벽에서 흘러내리는 빙하가 발아래로 보인다. 화창한 날보다 시야를 가린 오늘이 오히려 자연의 광활함을 느끼게 한다. 눈이 내린다. 하산을 시작해 단번에 고쿄로 내려갔다. 디디와 템바가 보온병을 들고 마중 나와 있다. 저녁은 숙소에서 준비한 닭백숙으로 푸짐히 먹었다. 날씨는 제법 쌀쌀해 씻지도 못하고 물티슈로 대충 닦고 침낭에 기어 들어간다. 뜨거운 물을 담은 수통을 품고 잠자리에 든다. 디디는 고소에 적응될 만하면 고도를 더 높여, 컨디션은 좋아졌다 나빠졌다 반복한다.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렌조고개에 올라 자이언트 봉과  6,000~7,000m급 미봉들 감상


5월 28일 날씨는 맑았다. 오늘은 500m의 고도를 올라 렌조고개(Renjo Pass·5,345m)를 넘어 룽덴(Lungdhen·4,380m)까지 고도를 1,000m 낮추어야 하는 긴 운행이다. 아침 이른 시간 숙소에서 싸 준 삶은 감자를 챙겨 넣고 호수를 빗겨 나간다. 길은 마른 초원과 가파른 언덕을 에둘러 5,000m급 바위 장벽으로 둘러쳐진 상부 플라토에 닿는다. 붉은색 바위 안부에 룽다가 펄럭이는 렌조고개가 눈에 들어왔다.


두 시간 반 동안 느린 걸음으로 상쾌하게 고갯마루에 올랐다. 돌로 단을 쌓은 전망대다. 동쪽으로 에베레스트, 로체, 마칼루 등의 자이언트 봉우리와 6,000~7,000m급의 미봉들, 그리고 서쪽으로 보테코시계곡 너머로 루낙 연봉(Lunag·6,895m), 멘룽체 동봉(Menlungtse East·7,181m), 캉코롭(Kang Korob 또는 Pangbuk·6,705m), 드랑낙리(Drangnag Ri·6,801m), 텡기라기타우(Tengi Ragi Tau·6,938m) 등 미봉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 초오유 정상 부근에서 남서쪽으로 바라 본 롤왈링 히말의 봉우리들.

내려가는 길은 돌단을 쌓은 바위 절벽, 빙하 호수, 초원이다. 시원한 맞바람에 디디는 양팔을 벌려 어릴 적에 비행기 놀이를 하듯 이리저리 뛴다. 오후 1시 작은 마을 룽덴(Lungdhen·4,380m)에 도착했다. 내일이 남체 축제일이라 마을은 텅 비었고 로지 한 집만 문을 열었다. 우리 짐은 웅추 사촌이 좁교(야크와 소의 교배종)에 실어와 도착해 있었다.


이제 두 번째 답사 목표인 낭파라(Nangpa La·5,716m)까지 어떻게 갔다 올 것인지가 문제다. 난로 가에 로지 주인 부부, 가이드 템바, 그리고 낭파라를 넘었던 경험을 가진 웅추 사촌이 둘러앉았다. 먼저 로지 주인은 낭파라 를 넘는 야크 대상행렬은 6월에서 9월까지 운행하는데 올해는 중국 측에서 국경을 폐쇄했다는 소식과 도중에 길이 많이 무너져 야크에 짐을 싣고 갈 수 없다고 했다.


룽덴에서 30여 분 위쪽의 아례(Arye·4750m)를 떠나면 로지는 없고 야크 카르카에서 캠핑해야 한다. 고개까지 올라가는 데 이틀 반, 내려오는 데 하루 반 거리다. 짐은 카고백 3개다. 야크가 운행할 수 없고 포터로 일할 주민들은 남체에 다 내려갔으니 낭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루클라공항이 26일부터 로컬 항공편이 악천후로 결항되어 트레커와 관광객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루클라에서 대기 중인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루클라에 지체될 이삼일의 여유를 두고 내려가야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김재수 대장팀도 로컬 항공을 타지 못했고 결국 26일 오후 2시경 밍마가 보낸 헬리콥터로 카트만두로 나갔다고 했다.


우리는 ‘치고 빠지기’(Hit and Runaway) 작전으로 바꿨다. 내일 새벽에 출발하여 낭파라가 보이는 캉충(Kanchung·5,200m)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고, 모레 남체, 다음 날 루클라에 가서 빨리 탈출해야 할 위기였다. 모든 건 날씨에 달렸다.


▲ 붉은 바위 절벽 밑으로 렌조고개에서 내려서고 있다. 디디,

낭파라 향하면서 영국의 인도 출신 ‘지리 첩보원’ 떠올려


29일 새벽, 어둠이 채 가시기 전에 커피 한 잔을 마시고 템바, 웅추 사촌, 나는 룽덴을 출발했다. 3일 운행거리를 하루에 갔다 오려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시간 외에는 지체할 수 없다. 아례 그리고 출레(Chhule)를 지난다. 강 건너 출레마을 위쪽으로 1951년 영국 에베레스트 정찰대의 대장이었던 에릭 십튼 팀이 첫 탐험을 했던 멘룽고개(Menlung La·5,877m)가 보였다. 디디와 포터는 룽덴 로지에서 느지막이 출발해 저 계곡의 봉우리들을 촬영하고 되돌아 갈 것이다. 멘룽 고개 뒤쪽에서 십튼이 설인 예티(Yeti)의 발자국을 촬영했던 곳이다.


보테코시빙하 말단 옆으로 들어간다. 무너져 내리는 흙 절벽길이다. 자욱한 몬순 구름이 계곡을 빠르게 타고 올라와 우리를 덮었다. 너무 빨리 구름이 몰려왔다. 6시 반이다. 이런 자욱한 구름이 계속되면 캉충으로 가면서 수많은 미등의 봉우리들을 볼 수 없다. 시야가 5m도 안 되는 구름 속을 계속 걷는다.


다행히 숨나빙하(Sumna)를 횡단하면서 구름은 마법이라도 부리듯 없어져 버렸다. 숨나빙하와 낭파빙하가 만나는 Y자 계곡에 봉우리들이 나타났다. 작년 초오유 북면 베이스캠프에서 낭파라 위로 불쑥 솟은 설봉이 무엇일까 등반 내내 궁금했었다. 그 때 가지고 있던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지금 내 눈앞에 선 루낙이다.


▲ 렌조고개(5,345m)를 오르는 뒤로 검은 피라미드 에베레스트가 보인다.

1885년 어느 날, 한 무리의 대상이 낭파라를 향해 길을 터벅터벅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고 외진 곳에 위치한 티베트를 향해 가는 중이다. 주로 면화와 담배를 싣고 라싸로 향하는 이들은 가져간 물건들을 야크 털이나 붕사, 염소 등과 교역하려는 상인들이다. 이 일행 중에 불교 순례자 차림의 잘 생긴 젊은이가 보인다. 한 손에 염주를 들고 깊은 생각에 잠겨 나지막이 “옴 마니 밧메훔”을 읊조리며 걷는 이 젊은이는 영락없이 신앙심 깊은 수행자의 모습이다.


그러나 만일 다른 일행들이 좀더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이 수행자의 행색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보통 염주는 108개의 알을 꿰어 만들게 마련이지만, 이 순례자의 손에 들린 염주는 알이 100개인 데다 열 번째마다 다른 것들보다 조금 큰 알이 꿰어 있다. 젊은이가 불경을 새겨 손으로 돌리는 마니차의 갈라진 틈새로 조그만 종이 쪼가리를 밀어 넣는 모습도 예사롭지 않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일행들이 마니차를 조사한다면 아마도 나침반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가 들고 있는 순례자 지팡이에는 작은 온도계가 감춰져 있다.


다행히 아무도 이 인도 출신의 판디트(Pandit 또는 Pundit는 지식이 있는 사람, 또는 학자라는 뜻)  하리 람(Hari Ram)을 주시하지 않는다. 싱은 불교 승려가 아니다. 영국 첩보당국은 그를 ‘넘버×(No.×)’이라는 암호명으로 부른다. 영화 속에 나오는 007처럼 준수한 외모에 최신 첩보 장비를 갖춘 그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다. 실제 007의 작가 이안 플레밍의 외삼촌 로버트 쇼(Robert Show)는 19세기 중후반 야르칸트 등 중앙아시아로 가는 외교사절단을 이끌며 스파이 활동을 했으며 그의 친형 피터 플레밍(Peter Fleming)은 중국 서역의 천산남로를 횡단했던 탐험가였다.


인도를 지배해 오던 영국은 19세기 후반에 인도의 거의 전 지역을 측량해 지도를 완성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산맥이 가로막고 있는 북쪽 끝, 티베트만은 지도에 그려 넣을 수 없었다. 중앙아시아에 눈독을 들이는 러시아도 영국이 티베트 지역을 지도로 그리는 데 큰 장애물이었다.


한편 중국은 러시아든 영국이든, 티베트의 지형을 먼저 파악해 지도를 만드는 나라는 곧이어 그 땅을 집어삼킬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중국 황제는 당국의 허락 없이 티베트로 잠입하는 외국인, 특히 유럽인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사형에 처한다는 칙령을 공포했다.


당대의 가장 야심 찬 지도 제작 계획이라고 할 수 있는 ‘인도 대측량 사업’을 지휘하던 영국은 북쪽의 티베트 일대를 빈 공간으로 남겨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지역 사람들로부터 닥치는 대로 지도를 사들였지만, 여전히 더 정확한 정보가 필요했다. 영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영국인 측량사가 티베트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현지인을 훈련시켜서라도 그 지역을 직접 측량해야 했다.

   

▲ 일몰지는 콩데리 연봉

 

   - [해외 트레킹 | 네팔] | 사진 김창호 몽벨 자문위원·월간산 기획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