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야기

-* 서울 이야기 (13) *-

paxlee 2005. 6. 26. 18:45

                                      * 북한산성 사적 제162호.*

북한산성하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산행 시 만나는 북한산의 용암문에서 부터 대남문까지의 성벽만을 떠올린다. 북한산 능선을 이어주는 성벽과 문루(성벽위의 다락집), 어쩌면 대다수 사람들은 그것이 북한산성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조금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북한지”라는 책과 “서울 600년사”에 기록으로 남아있다. 북한산성이 북한산의 요새와 그 속에 숨겨진 비밀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성가퀴를 안에서 보면 바깥으로 뚫린 구멍이 모두 정사각형 형태이지만 바깥에서 보면 두 개가 정사각형이라면 한 개는 직사각형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뚤린 구멍을 보면 두 개는 반듯하지만 한 개는 45도 경사를 이루며 아래로 파져있는 것이다. 가운데에 있는 근총안은 성벽에 근접한 적을 공격할수 있도록 총안의 각도를 경사가 심하게 밑을 향하도록 설치하였고 좌우에 있는 원총안은 원거리의 적을 공격 할 수 있도록 총안을 수평되게 설치하였다. 이렇게 북한산성 성벽 구멍하나에도 특별한 이유가 있다.


북한산성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유사시에 대비한 원성(援城, 구원이 가능한 성)의 개념을 가지고 확고한 국방정책하에 조성된 성이다. 약200년 간 잘 보전되어 오다가 조선말 이후에 관리가 소흘 해 지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풍 수해와 6.25사변 시에 폐허가 되다시피 한 역사의 현장이다. 지금은 그 일부의 성벽과 성문만이 복원되어 북한산성은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지금도 산행을 하다보면 성벽공사를 하고 있는 곳이 있다. 북한산성 그 전부를 언제쯤이나 다 복원을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조선시대의 정치상황과 국방정책의 일부나마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북한산을 등반 시 산성을 따라 한바퀴 돌면서 북한산의 산세와 산성의 위치, 그 부속 건물의 흔적을 살펴보는 것은 등산의 진수를 맛보게 될 것이다.

북한산성은 북한산 즉 삼각산에 유사시 임금과 왕실을 이곳으로 옮겨 피난을 하기 위해 축성된 성이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어거하여 47일간의 항전을 하였는데, 멀리 광주 남한산성까지 어거하기가 멀고 수도 한성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으로 많은 찬반 여론을 거처 북한산에 북한산성을 조선조 숙종 37년 4월 3일 착수하여 그해 10월 19일 완공이 됨으로 성곽을 쌓는데 소요된 기간은 6개월여에 불과하였다.

북한산성의 둘레는 7620보 (1보는 주척으로 6척이므로 약 12.7km이다) 인데, 그 축조는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의 삼군문의 병력과 재정으로 충당을 하였다. 훈련도감은 서쪽의 수문북변 용암까지 2292보 즉740첩을 수축하고,(첩이란 성가퀴의 한자어임) 금위영은 동북부인 용암남변에서 보현봉까지 총 2821보를 1107첩, 어영청은 동남부인 수문남변에서 보현봉까지 총 2507보 986첩 분담하여 축성에 참가하였다.

총2707첩이 되는데 당시 한성 4대문 안 도성의 크기가 600첩이 조금 넘은 것을 고려하면 조선조정에서 인적, 재정적 부담으로 축성의 당위성에 대한 오랜 논쟁을 한 이유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축성재원은 쌀 1만석과 탄, 생갈 등으로 재정이 충당 될 것이라 했지만 실제 축성 시 사용된 재원은 쌀만 16500석으로 기타 모든 재정이 상당히 초과되었다고 한다.

북한지에 의하면 훈련도감은 북문에서 달현, 원효봉에서 노고산 선봉, 수구문에서 지장리, 노고산 등성, 금위영은 대성문에서 정능리, 동문에서 수유현, 동장대에서 장현, 용암봉에서 우이천을 어영청은 여기연에서 지장리 마분까지 분수하였다. 즉 훈련도감은 대서문에서 백운대 위문까지고, 금위영은 대체로 동장대에서 대성문까지 이다. 금위영은 대서문에서 대남문까지로 보면 되겠다.

북한상성은 북한산 정상 백운대를 정점으로 하여 백운문(위문)->만경대(봉)->용암봉->용암문->용출봉->지단봉->동장대->대동문->보국문->대성문->대남문->문수봉->청수동암문->나한봉->나월봉->부왕동암문->중취봉->용혈봉->용출봉->가사당암문->중성문->의상봉->대서문->서암문(시구문)->원효봉->북문->염초봉->백운대로 이어지는 북한산성은 그 규모가 거대하다. 

 


 

북한산성의 길이는 약12.7Km이며 면적은 200여만 평으로 대동문, 대서문, 대남문, 북문, 대성문 5개의 대문과, 서암문(시구문), 백운동암문(위문), 용암암문(용암문), 동암문(보국문), 청수동암문, 부왕동암문, 가사당암문 등 7개의 암문들, 거기에 중성문과 2개의 수문을 포함하여 모두 15개의 문이 성안의 행궁을 지켰다. 행궁은 120여칸 규모의 산중 궁궐로 웅장한 모습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행궁터가 남아있을 뿐이다.

행궁을 지키는 훈련도감, 여영청, 금위영 의 삼군 파견부대도 상주해 있었고.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 3개의 장대와, 중흥사, 태고사, 진국사, 보국사, 보광사, 부왕사,국녕사, 상운사, 서암사, 용암사, 원각사 등 11개의 절과, 봉성암, 원효암 2개의 암자도 그 성안에 존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그리고 6.25사변과 풍수해 등으로 모두 소실되고 그 흔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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