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야기

-* 서울 이야기 (14) *-

paxlee 2005. 6. 28. 23:25

 

         북한산 신라진흥왕순수비(국보 제3호 / 사적 제228호)

 

북한산 비봉에는 신라 진흥왕순수비가 있다. 이 암벽의 봉우리는 순수비가 있어 비봉(碑峰)이란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원래 이곳에 있던 순수비는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3호로 지정되 경복궁에 옮겨져 보관되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문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진흥왕순수비의 모조비석을 만들어 세우고 사적 제 228호로 지정하여 진흥왕순수비를 대신하고 있다.  

 

이 순수비가 알려지게 된 것은 1816년 7월에  추사 김정희(金正喜)가 김경연(金敬淵)과 함께 비봉에 올라 이 비석을 조사하고 이듬해 6월에 조인영(趙寅永)과 함께 다시 조사한 결과 진흥왕 순수비임을 확인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에 의해 글자의 마멸로 건립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한국에서 발견된 순수비는 신라 제24대 왕 진흥왕(眞興王)이 세운 것으로 확인되었다.

 

순수비의 '순수'란 임금님이 전쟁에서 새로 확보한 영토를 둘러보고 민심을 살피고 현지의 통치상황를 보고 받는 의례의 행차를 하면서 그 기념으로 비석을 세우기도 하였는데, "북한산 진흥왕순수비"는 이 비의 비문속에 나타나는 '순수경관 (巡狩管境)'이란 구절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창녕(昌寧) 순수비(561년/경남 창녕군 소재), 북한산(北漢山) 순수비(서울 소재), 황초령(黃草嶺) 순수비(함남 함주군 소재), 마운령(摩雲嶺) 순수비(568년/함남 이원군 소재) 등이며 이들은 모두 4개소에 진흥왕이 확장한 영토, 곧 당시 신라의 국경을 표시한 비(碑)이다. 비면의 각자(刻字)는 모두 12행으로 한 행마다 32자가 해서체(楷書體)로 음각되어 있다.

 

비신(碑身)의 높이는 1.54m, 너비는 0.71m, 두께는 0.16m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4기(基)의 진흥왕순수비 중 하나로 화강암으로 된 이 비석의 형태는 다른 비와는 달리 직사각형으로 가공된 석재를 사용하여 자연암반 위에 2단의 층을 만들고 세웠다. 이 비는 당시 신라의 국경 ·관직 ·제도 ·지명 등을 밝혀주는 고대사 연구의 귀중한 금석문 자료이다.

 

북한산 비봉(556m)은 암벽으로 이루어 진 봉우리여서 오르기가 쉽지 않다. 향로봉 쪽에서 오르는 길은 조금 어려움을 느낀다. 사모바위 쪽에서 오르는 길은 그래도 조금 쉽기는 하지만 리지의 기본은 있어야 오를 수 있는 코스이다. 힘들게 땀을 흘리며 오르면 비봉 정상에 진흥왕의 순수비를 만날 수 있다. 등산을 하면서 역사와 문화의 유산을 접하는 즐거움은 등산 이상의 묘미를 음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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