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야기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마당[4] (서울 이야기 30)

paxlee 2005. 11. 2. 18:56

 

 * 아시아관실(3F)

 

01.인도네시아실

인도네시아는 자바(Java), 칼리만탄(Kalimantan), 수마트라(Sumatra), 술라웨시(Sulawesi) 4개의 주요 섬과 함께 17,000여개의 작은 섬들로 구성된 세계에서 가장 섬나라로써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실에는 군도국가가 지닌 독특한 문화적 특징을 엿볼 있는 다양한 문화재를 전시하였다.

전시실의 구성은 먼저 인도네시아의 역사적 흐름을 이해할 있도록 시대별 대표문화재를 전시하였으며, 이어 힌두교와 불교 종교관련 문화재의 전시를 통해 고대 인도네시아인이 지녔던 정신세계를 엿볼 있도록 하였다.

 

더불어 인도네시아인들의 미감을 느껴볼 있도록 전통공예품인 크리스와 바틱 등도 전시되어 있다. 이번에 전시된 문화재는 모두 인도네시아국립박물관으로부터 차용한 것으로 인도네시아의 문화와 미술을 한국에서 체험할 있는 기회가 것이다.

 

02. 중앙아시아실   

중앙아시아실에는 아시아 대륙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중앙아시아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대부분 사막과 고원으로 이루어진 지역은 매우 건조하기 때문에, 종이, 나무, 의류 유기 물질이 천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고도 비교적 보존되어 있다. 중에는 귀중한 문서와 미술 작품이 포함되어 있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구미 탐험대가 이곳에서 조사와 유물 수집을 하기도 하였다.

 

당시 오타니[大谷]탐험대라 불리는 일본의 승려 조직도 이곳을 차례 답사하며 많은 유물을 수집했고, 당시 수집품 일부가 오늘날 국립중앙박물관에 이르고 있다. 중앙아시아실의 전시품 대부분은 현재의 중국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 각지에서 출토된 것들이다.

 

크게 종교미술과 고분, 주거지 출토품으로 분류되는 전시품에는 석굴사원의 벽화를 비롯하여, 불화, 불상, 토기, 흙으로 빚은 인형, 생활용품 등이 포함되어 있다. 중앙아시아실의 전시는 국제적이고 복합적인 중앙아시아 문화와 미술의 특징을 이해하고, 더불어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 교류의 시각에서 우리나라의 문화와 미술을 새롭게 조명할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03. 중국실   

중국은 세계에서도 일찍이 문명이 발달한 국가 중의 하나이며 장구한 역사가 있는 나라이다. 북경원인을 대표하는 구석기시대, 황하와 장강을 중심으로 발달한 신석기시대, 석기와 청동기시대의 과도기인 용산시대를 지나 기원전21세기에 비로소 문명의 시작인 청동기시대로 접어들어 , , 주왕조가 세워지고 고대국가의 면모를 갖추었다.

 

기원전 770 주왕조가 쇠퇴하고, 철학적 이념이 생기는 춘추전국시대가 열리는데 문화, 정치의 혼란과 진통 속에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고 문자와 도량형의 통일, 만리장성을 축조하였다. 그러나, 실질적인 천하통일은 한대가 되서야 이루어지고 지금의 한자와 정치제도, 경제제도 등을 재정비하고 역사를 정리하여 사료를 편집하였다.

 

위진남북조시대에 외래문화인 불교가 융성하여 전국 각지에 사찰이 만들어지고 오랜 기간 중국인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하게 된다. 당대에는 서역을 통한 유럽과의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져 중국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송대에는 도자기의 발달로 전국에 관요와 민요가 생기고 외국과의 교역도 더욱더 활발하게 된다. 명대는 과학의 발달로 근대사회로의 발판을 마련하고 청대는 만주족의 왕권을 잡은 나라로써 서양열강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격동기를 맞이하는 마지막 왕조가 된다.

 

중국은 이렇듯 왕조의 교체로 문화의 변화와 부흥을 하며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한국과 서로의 문화에 영향을 주고받은 국가 중에 하나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러한 중국문화를 용산박물관으로의 이전과 함께 새로이 다시 태어나는 중국실에서 알기 쉽고 친근감 있게 감상할 있도록 소장품을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04. 신안해저문화재실

신안해저문화재는 전라남도 신안 앞바다에 가라앉아 있던 중국 무역선에서 발굴된 원나라 국제교역 물품이다. 1975 어부가 우연히 청자 꽃병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되어 650 동안 깊은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던 무역선의 비밀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1976년부터 1984년까지 10 차례에 걸쳐 수중 조사 발굴을 실시한 결과, 침몰 선박의 몸체를 비롯하여 3만여 점의 유물을 건져냈다. 인양한 배와 출토품은 규모렐별賻涌【 국내외의 커다란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인양한 선체船體 조각을 맞춰서 복원한 중국 무역선은 길이가 28.4m, 폭이 6.6m이며, 칸막이(隔壁) 짐칸, 배의 뼈대인 용골龍骨을 갖춘 200 내외의 옆으로 자른 단면의 모습이 V자형인 나무배였다. 유물은 7개의 칸막이로 나뉜 짐칸에서 인양되었는데 중에는 중국 도자기 2만여 점과 함께 고려, 일본의 도자기가 포함되어 있으며, 금속제품金屬製品, 석제품石製品 등이 있었다.

 

밖에 동전 28톤과 자단목紫檀木, 주석朱錫 등의 원자재가 인양하였다.
무역선은 원나라 지치삼년至治三年(1323) 중국 저장 (浙江省) 닝보(寧波)에서 교역상품을 싣고, 일본의 하카타 (博多港) 도착하여 교토(京都) 일대의 사원 등지에 물품들을 공급하려 하였다. 그러나 항해 난파되어 신안 앞바다에 가라앉게 것이다. 함께 인양된 생활용품은 14세기 삼국의 무역 상황과 당시 동아시아인의 생활과 풍속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05. 낙랑유적출토품실

낙랑군은 기원전 108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군현이다. 낙랑군은 기원 313 고구려에 의해 멸망될 때까지 평양을 비롯한 평안도·황해도 일대에 위치하면서, 한국 고대국가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낙랑군에는 중국에서 건너온 사람과 고조선의 주민들이 어울려 살았는데, 중국에서 파견된 관리가 고조선의 지배세력을 이용하여 다스렸다.

 

초기에는 고조선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국 문화와 고조선 문화가 결합하여 지역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였다. 낙랑군의 중심지였던 평양시 대동강 남쪽에는 당시 관청이 있었던 낙랑토성과 3,000 정도의 고분군이 남아 있다.

 

그리고 평안도, 황해도 일대에도 많은 낙랑군 시기의 유적이 전해진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일제 강점기에 조사된 중요한 고분 발굴 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낙랑실에서는 목곽묘, 귀틀묘, 전실묘로 이어지는 낙랑 고분문화의 흐름을 통해 낙랑군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있도록 하였다.

 

06. 일본실

일본실은 고대인의 조형의식을 표현한 조몬, 야요이 토기와 고분시대의 발굴품, 종교적 영감을 표현한 불교미술품, 일본의 쓸쓸한 정적의 미감을 표현한 다도, 장식성이 풍부한 칠기, 도자기, 염직 등의 공예품, 시대정신을 표현한 회화와 추상적 깊이를 보이는 서적, 일본 특유의 다색판화인 우키요에를 전시할 예정이다.

 

일본의 무로마치시대부터 에도시대에 회화와 우키요에를 중심으로 우리관 소장 일본미술품이 최초로 공개되며, 98건에 이르는 일본고고미술작품을 도쿄국립박물관으로부터 대여하여 2 간에 걸쳐 전시 교체를 통하여 소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