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이야기

-* 소나무를 찾아서 1. *-

paxlee 2006. 7. 7. 22:31
 
봄바람, 솔바람, 어버이 소나무와 아기 소나무
 

소나무는 바람부는 날 만나러 가야 제맛이다. 신묘한 솔바람 소리를 눈 감고 들으며 상상의 나래를 펴보는 멋진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솔잎을 스치고 불어나온 신선한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안으면, 번잡한 일상생활로 돌아온 뒤에도 은은한 솔향기를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5월 14일 경남 거창과 함양, 전북 무주 지방의 천연기념물 소나무를 만나러 가는 길, 날씨는 화창했고 바람도 적당히 불었다.

 


                  경남 함양군 휴천면 목현리 구송의 멋드러진 모습.

 

경남 함양군 휴천면 목현리의 구송(천연기념물 358호) 주변엔 울타리가 없었다. 문화재 안내판만 우두커니 서 있었다. 보호한답시고 울타리 치고 두텁게 흙 덮고 시멘트 발라 나무를 말라죽이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았으니 천만 다행이다. 울타리가 없다 보니 어른 셋이 둘어싸고 팔을 벌려야 껴안아질 수 있을 만큼 우람한 나무의 기운을 더욱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다.  1718년 진양 정씨 중시조 당곡공이 1718년 심었다는 이 나무는 원래 밑둥에서 9개의 줄기가 갈라져 나온 반송이라 구송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나 지금은 가지가 7개뿐이었다. 나무 가까이엔 냇물이 흘렀고 주변 논에선 농부들이 모내기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 농부는 경운기를 몰고 나무 옆을 무심히 지나갔다. 나무는 있는 그대로 마을의 일부였으며 주민들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었다. 솔바람 모임 일행은 나무 아래 옹기종기 앉아 김밥 도시락을 나눠먹었다.

 


경남 거창군 위천면 당산리의 우람한 당송은 400여년 세월 동안 변함없이 마을을 지키고 서있다.

 

나이가 400살은 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남 거창군 위천면 당산리의 당송(천연기념물 410호)은 우람했다. 마침 가지 마다엔 노란 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고운 빛깔의 꽃가루를 가득 머금은 송화가 그토록 아름답고 탐스럽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높은 가지 위엔 새들의 보금자리가 세 개나 있었다. 맘씨 좋은 터줏대감이 400년간 마을을 지켜준 덕분인지 마을 사람들의 인심도 후덕했다. 주민들은 멀리서 온 낯선 손님들에게 막걸리와 매콤새콤한 김치 안주를 푸짐하게 대접해줬다. 인삼과 각종 약초를 넣어 빚었다는 막걸리는 목구멍에 걸리지 않고 부드럽게 잘도 넘어갔다. 초등학생 꼬마 손님도 연거푸 몇 잔을 들이킬 만큼 달콤했다. 어머니의 손맛이 느껴지는 잘 익은 김치 맛은 쨍한 것이 입안을 얼얼하게 만들 만큼 강렬했다.

 


        당산리 당송이 아름다운 송화를 가득 피워올렸다. 노랗고 귀여운 소나무 꽃송이들.

 


경남 거창군 위천면 당산리 당송 아래서 만난 인심 좋은 마을 주민들. 또 놀러오라며 인사하시던 할머니(사진 왼쪽)와 막걸리 안주로 맛있는 김치를 가져다주신 아주머니(사진 오른쪽 걸어오는 이)의 모습이 보인다.

 

몇년 전 이 나무를 찾았던 전영우 교수가 만난 마을의 한 할아버지도 당산목 이야기를 들려주고 차에 배추를 가득 실어주셨다고 한다. 전 교수가 마을 주민에게 인심 후한 할아버지의 안부를 물었더니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는 쓸쓸한 대답만 돌아왔다.  올해 연세가 83세라는 마을의 한 할머니는 작별 인사를 건네는 내게 ″나중에 또 오라″면서 정겨운 미소를 지어보이셨다. 60여년 전 이 마을로 시집 오면서부터 매일 나무를 지켜보셨다는 할머니. 내가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 할머니를 또 만나뵐 수 있을까. 할머니의 인생을 변함없이 지켜보고 있었을 400살 당송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바람에 흔들리며 노래하고 있는 전북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의 반송.

               나무 아래 서 있는 분은 박희진 시인.

 

전북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의 반송(천연기념물 291호)은 바람에 흔들리며 온몸으로 노래부르고 있었다. 수만개의 가지마다엔 거대한 몸집에 비해 턱없이 작고 귀여운 솔방울과 꽃송이들이 수없이 달고 있었다. 나무를 둘러싼 울타리 안에는 지난 어버이날 누군가 찾아와 놓아둔 카네이션 꽃바구니가 눈에 띄었다. 바구니에 매달린 리본 위의 '어버이 은혜 감사합니다'란 문구를 읊조리다 보니 가슴이 찡해졌다. 어버이 같은 소나무에 감사의 꽃을 바친 이름 모를 이의 마음 씀씀이가 내 마음도 따뜻하게 만들었다. 말없는 나무는 그를 영원히 기억해 주리라.

 


 누가 가져다 놓았을까. 반송 아래 다소곳이 놓여 있는 카네이션 꽃바구니엔

        '어버이 은혜 감사합니다'라고 쓰인 리본이 달려 있었다.  

 

 나무를 누워서도 보고 싶어서 나무에서 10m쯤 떨어진 양지 바른 무덤가에 무심코 누웠다. 내 눈 앞엔 우람한 나무대신 연둣빛 아기 소나무가 나타났다. 무심코 내딛는 사람들의 발밑에 쓰러지지 않고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 어린 나무는 분명 수백년된 우람한 반송의 아기인 것 같았다. 저 거대한 나무도 이렇게 작은 나무였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애틋한 마음으로 아기 소나무가 무사히 자라나길 기원했다. 어버이 소나무의 마음도 내 마음과 같았을 것이다.

 


    연둣빛 아기 소나무를 거대한 어버이 반송이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 글, 사진= 정희정기자님의 글에서 (문화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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