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의 산행기

-* 도봉산 *-

paxlee 2007. 2. 20. 20:23

 

                                  도봉산

 

2007, 02, 19. 11:15. 구 도봉 매표소를 지나 다락원능선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올라갔다. 설 연휴의 마지막날 이어서 그런지 등산객은 일요일 이상으로 많았다. 입춘이 지나고 오늘이 우수인데, 날씨는 전형적인 봄 날씨이다. 아침안개가 아직 다 거치지는 않았으나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화창하였다. 길이 비좁게 올라가는 등산객들의 틈에 끼어 오늘은 처음부터 다락원능선의 매인 길을 오르기로 하였다. 건너편 암벽능선 보다는 조금 쉬운 길이라고는 하지만 이 길도 암벽이 길을 막아서곤 하여 돌아가는 우회길이 준비되어 있다.

 

고개 하나를 넘어서면 좌우로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길로 가면 계곡으로 오르는 길이 있고, 암벽능선으로 오르는 길이 연결된다. 오늘은 암벽길을 접어두고 다락원능선의 길을 따라 오르기로 정하고 올라갔다. 오르다 보면 암벽이 가로 막아서고 좌측으로 우회길이 나 있다. 그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는 길로 조금 내려서면 은석암아래 약수터가 있어 이곳에서 쉬기도하고 약수를 한 바가지 마시고 다시 좌측으로 암벽길로 오르는 길이 연결되기도 한다. 식수가 모자라면 이곳에서 체워가야 한다. 이곳을 지나면 약수터가 없다.

 

도봉산을 오르는 길이 많지만 그래도 이 길이 가장 분비는 것은 다락원능선 전망대에서 도봉산을 바라보는 그 광경이 가장 웅장하게 느껴지고 아름답게 우리의 눈을 사로잡기 때문에 이 길이 도봉산 산행의 매인 길의 역할을 한다. 다락원능선 정상과 자운봉(740m)과 만장봉(718m), 그리고 선인봉(708m)이 도도하게 당당하게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도봉산은 나무와 숲이 주인이 아니라 암벽이 도봉산의 주인 역할을 한다. 암벽이 도봉산의 얼굴이며 산의 모습을 만들어 주고 있으니 그 만큼 도봉산은 웅장하고 힘을 느끼게 하고 산의 정기가 발산하는 느낌을 받는다.

 

다락원능선과 암벽능선에서 올라와 등산객이 합쳐지는 지점에 이르면 도봉산의 망월사가 한 눈에 올려다 보인다. 도봉산에도 사찰이 많이 있지만 망월사와 천축사, 그리고 원통사을 도봉산의 3대 사찰이라고 한다. 망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신라 때인 639년(선덕여왕 8)에 해호화상(海浩和尙)이 왕실의 융성을 기리고자 창건했다고 한다. 천축사는 673년(신라문무왕 13)에 의상(義湘)이 수도하면서 현재의 자리에 옥천암(玉泉庵)이라는 암자를 세웠는데, 1398년 태조가 옛날 이곳에서 백일기도 하던 것을 상기하여 절을 중창하고 천축사라는 사액을 내렸다다고 함.

 

원통사는 863년(신라 경문왕 3)에 도선국사가 창건하고 원통암(圓通庵)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우이암 아래쪽에 자리잡은 원통사는 예로부터 좌우에 수락산과 삼각산을 거느리고 한강을 바라보는 도봉산의 최고 길지에 자리잡은 수행기도처로 알려져 왔다. 이 세 사찰은 신라시대에 창건하여 유서깊은 전통과 불교문화를 전하고 있다. 불교신자가 아니드라도 산행을 하면서 한 번 쯤은 절에 들려 절을 관람 하다보면 산에서 느끼지 못하는 또 다른 감동이 우리의 가슴을 파고 들기도 한다. 산행은 그래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여기서 부터는 능선길이라 걷기가 한결 편하고 자유스럽다. 좌우의 경관을 조망하면서 느긋하게 오르다 보면 우측으로 포대능선의 암벽도 수려하고 기암으로 이루어진 모습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산행길이 위험하여 쇠 말뚝을 박고 쇠 줄로 연결해 놓은 것을 잡고 오르는 길 목에 이르니 오르는 등산객들의 줄은 길게  늘어져 지체가 극심하다. 기다리다가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우측으로 돌아가는 길로 올라갔다. 음지의 길에 들어서니 길은 얼음으로 꽁꽁얼어있어 길이 무척이나 미끄러웠다. 오르다가 내려가는 길에 발을 헛 디디면서 보기 좋게 한 번 응덩방아를 찌었다.

 

포대능선에 올라서서 돌아가는 길과 포대능선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나누어 지는데, 그래도 정상길로 가고싶다는 생각에서 포대능선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이길도 곳곳에 얼음이 있어 미끄러웠다. 포대능선 정상에는 등산객으로 만원이었다. 도봉산 V계곡 앞에 이르니 또 등산객이 길게 늘어서 있다. 시계를 보니 1:15분이다. 한쪽에 바위위에 앉아서 컵라면를 덥혀서 간단하게 점심을 때웠다. V계곡을 우회하는 길로 내려가서 그 길을 올려다 보니 눈이 그대로 쌓여있고 얼음이 얼어있어 기다렸다가 V계곡길로 내려갔다. 이렇게 복잡한 길에 반대로 올라오는 산객들과 만나니 길은 더 복잡하였다.

 

도봉산에 왔다가 이 V계곡길을 지나가지 않으면 도봉산 산행의 스릴과 멋이 반감 되곤한다. V계곡 정상의 날카로운 바위위에서 산하를 바라보는 조망도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신선대 앞에 이르면 자운봉의 그 장엄한 자태를 우러러 보면서 등산객이 오를 수 있는 도봉산의 정상은 신선대이므로 모두가 이곳으로 오른다. 일부는 암벽으로 힘들게 오르기도 하고, 대부분의 등산객은 암벽길을 돌아서 올라간다. 혼자 산행하다보면 조금 생략을 하게 된다. 신선대에 오르지 않고 우회길을 돌아서 내려갔다. 이 길도 음지에는 길은 얼어있다.

 

주봉을 지나고 옛날 깡통집이 있던 곳에 이르면 이 집에 들려 마시던 당귀차의 그 향기가 아직도 입가에 도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곤 한다. 그 때의 산행은 그래도 낭만이 있고 즐거움이 있어 좋았다는 추억을 되 살려주어 혼자 산행하는 외로움을 달래주기도 하였다. 여기서 마당바위 쪽으로 하산하기로 하고 내려갔다. 이 길 또한 경사가 급하고 바위 길이어서 서서히 내려가야 한다. 하산 중에 고운손산악회의 러브라인님을 만났다. 산행중에 종종 지인을 만나지만 러브라인님의 만남은 무척 반가웠다. 

  

북한산 찬가  

 

나는 북한산과 만남을 계기로

인생 이전과 인생 이후로 나눈다.

내가 겪은 모든 굴욕은 내 스스로

사서 당한 굴욕이란 것을 알았다.

 

나의 좌절, 나의 실패는

오로지 그 원인이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의 배신은 내가 먼저

배신했기 때문의 결과이고,

애인의 변심은 내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결과라는 것을

안 것도 북한산 산상에서이다.

 

- 지리산의 작가 '이 병주'님의 시 -

 

이 병주님의 '북한산 찬가'는 도봉서원을 오르는 길목에 서 있는데, 이 시를 읽으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다. 우리는 현실에서 너무 자신만만하게 오만하게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 시 한편을 읽고 나면, 산이 자연이 우리에게 전하는 그 강열한 메세지는 참으로 우리의 현실을 되 돌아보게 한다. 이 병주님도 일상의 생활속에서는 잊고 지내다가 산행을 하면서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고통과 굴욕은 내 스스로 만든 것이라고 자탄한 것을 글로 표현한 그 진솔함은 우리를 스스로 고개숙이게 한다. 자기의 무덤은 자신이 판다는 옛 선인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