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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의 일상 - 712. < 아무도 사랑하지 마라>

아무도 사랑하지 마라 가야금 명인 故 황병기 선생 "감정 없애야 좋은 음악 나와" 최고의 시와 건축물은 '있을 것만 남겨진 것'아닐까 정치인을 사랑하지 마라 어리석은 악행이 될지니 내 일지(日誌)에는 ‘2003년 5월 16일 금요일 저녁’으로 적혀 있다. 독대한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에게 질문했다. “좋은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상상하기 힘든 답이 왔다. “감정(感情)을 제거해야죠.” 당황한 나는 반문했다. “그게, 말이 되나요?” 설명 따윈 불필요하다는 투로 명인은 다시 대답했다. “조용필 씨를 만났는데, 그분도 이점에 관해 나와 똑같은 생각이더군요.” 명인은 정말로 아무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2018년 1월 31일, 명인의 부음(訃音)을 들었다. 아브라함은 유대교, 기..

지평선 2022.08.20

백수의 일상 - 711. <그렇게 사랑이 왔다>

그렇게 사랑이 왔다. 시간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생각하는가? 모르고 짐작하는 사이 훌쩍 흰 머리가 가득 솟았다 생각해봐라 시간이 없다 눈이 시리도록 젊은 우리다 사랑해라 그 사랑 딩굴게 놔두지 말고 만지고,맞추고,느껴야 껴안게 되는 것 아닌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도 사랑은 절로 빛 발하는 보석이다 턱없는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말 없는 등받이가 되어 풍경을 함께 만들어 가는 두 사람 안온하고 따스한 바람이 부는 역에 다다를 것이다 난 해가 창살을 뚫고 비치는 카페 원탁에서 사랑을 기다렸고 기다림은 설렘이였다 그곳에서 당신을 만났다 악수를 청하는 다가선 손에선 풋풋한 레몬즙 냄새가 났다 당신 음성은 독특하면서도 툭툭 던져지는 원반 같았고 감정 표현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였다 편한 척 위장한 소심한 나를 명쾌..

백수의 일상 - 710. <독의 꽃>

독의 꽃 2019 동인문학상 수상작 | 최수철 장편소설 정밀한 언어와 문체 실험으로 인간 본연의 문제를 탐구해온 작가, 최수철의 신작 장편 『독의 꽃』이 출간되었다. ‘의자’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삶을 표상한 장편 『사랑은 게으름을 경멸한다』(2014) 이후 5년 만이다. 『독의 꽃』은 몸속에 독을 지니고 태어나 그 독을 점점 키우다가 결국 독과 약을 동시에 품고서 죽음에 이르는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이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독과 약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 스스로 이미 10여 년 전부터 ‘독’에 대한 작품을 구상해왔다고 밝힌 바 있듯이, 이 소설은 오랜 시간 궁구해온 사유의 결과물이자 실험적인 작가 정신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독’과 그 상관물인 ‘약’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가면서 우리 ..

Book Review 2022.08.20

백수의 일상 - 709. <향기에는 독이 있다>

'독(毒)의 꽃, 그 향기가 내품는 독(毒)과 약(藥)' “삶이란 책 한 장 한 장에는 독이 묻어 있어. 네가 손가락에 침을 발라 책장을 모두 넘기고 나면, 그로 인해 중독되고 탈진하여 죽음에 이르게 돼. 그러나 너는 그때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지”(최수철의「독의 꽃」 520p) 조명구는 “모든 살아있는 것은 독의 꽃”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과 주변의 삶에서 힘겹게 뽑아낸 독으로 정성껏 한 페이지 한 페이지씩 책장을 채워 갔다. 독이 묻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자, 한 송이 꽃이 환하게 피어났다. 이제 그의 몸에는 한 방울의 독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책이 되었고 꽃으로 화했다. “내 이야기는, 한 방울의 물과도 같은 한 인간의 생명, 독일 수도 있고 약일 수도 있는 그 물방울 하나의 생성에서 ..

지평선 2022.08.20